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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박근혜, 결과 중시 김무성, 명분 좇는 문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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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7 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한국 정치판을 움직이는 핵심 지도자다. 이들의 선택에 따라 정치권이 매번 요동을 치곤 한다. 갖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이들 정치 리더의 성향은 ‘신의 한 수’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때론 결정적인 패착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 갈림길 앞에서 무엇이 이들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했을까.


 중앙SUNDAY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이들의 리더십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에니어그램(Enneagram)’이라는 성격유형 검사방법을 활용해 여론조사(9월 셋째 주, 전국성인남녀 800명 휴대전화 조사)를 실시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마다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가슴형, 장(腸)형, 머리형 등 세 가지 스타일과 아홉 가지 하부 유형으로 나누어 성격과 특징·성향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장형은 본능을 중시하며 도전적이고 독립성을 강하게 추구한다. 가슴형은 감정적이면서도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게 특징이다. 머리형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안전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에니어그램은 최근 글로벌 대기업에서 인재 등용과 인사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월 17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첫 3자 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고집과 불신’이 박근혜 스타일 약점박 대통령은 뚝심이 강한 ‘장(腸)형’ 리더십을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가장 많은 19%가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인하다’고 답했다. 대범하고 침착하며 인내심이 강한 것도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가진 특징으로 분류됐다. 최근 가장 의미 있는 국정수행 성과로 꼽힌 ‘8·25 남북 합의’를 이끌어낸 것 역시 북한의 지뢰 도발에 뚝심 있게 대응한 박 대통령의 강점이 빛을 발한 경우다. 다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대전·충청 지역에선 이곳이 고향인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영향 때문인지 그를 감성적 리더십을 가진 ‘가슴형 지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대통령은 본인의 원칙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면 반드시 관철시키는 스타일”이라며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도 ‘타협=패배’라 생각할 정도로 원칙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확실한 강점만큼이나 약점 역시 뚜렷하다. 본인의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남을 잘 믿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며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에서 비롯됐다. 찍어내려고 마음먹으면 집중적이면서도 단호하다. 지난 7월 사퇴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대표적 사례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우직한 ‘곰’과 비슷하다. 본능적으로 독립심이 강하고 통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면에 감춰져 있어 관리해야 하는 감정은 ‘분노’다. 때론 무서울 정도로 분노가 표출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실제로 정치 지도자 중에는 장형이 많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한때 정치적 맞수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운동권 출신의 386정치인도 대부분 장형에 해당한다. 외국에선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역을 맡았던 숀 코너리나 ‘에어리언’ 시리즈에서 여전사 역할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시고니 위버가 꼽힌다.


휘어지는 김무성엔 ‘소신 부족’ 비판김무성 대표는 결과를 중시하는 ‘가슴형’ 리더다. 한번 손댄 일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릴 만큼 확실한 결과를 원한다. 4명 중 1명 이상(27%)이 김 대표에 대해 ‘결과를 중시하는 인물’로 생각했다. 매우 실용적이며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 관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20~30대 등 젊은 층일수록 이 같은 인식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위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낙천적이지만 언제나 목표 지향적이다. 동물에 비유하면 목표 의식이 강한 ‘독수리’와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에선 김 대표를 논리적인 ‘머리형 리더’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만큼 당내 갈등 해소에도 김 대표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최진 소장은 “김 대표는 과거 공천 과정에서 두 번이나 탈락했지만 탈당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선거에 나가 정치적 생명을 유지했다”며 “정치적 갈등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우회 돌파하거나 절충점을 찾아가는 협상가 스타일”이라고 정의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안 되면 부러지는 강한 스타일이라면 김무성 대표는 안 되면 휘어지는 유연한 스타일”이라고 비유했다. 다만 결정적으로 부딪히는 시점에선 뒷심이 무른 측면이 있어 소신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 대표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대표적인 가슴형 정치인이다. 경제인 중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 미국의 전설적인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이 유형에 가깝다. 그러나 김 대표가 관리해야 하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그는 최근 공천 룰을 놓고 청와대의 공세가 거세지자 “여당 대표에 대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런 면에 약한 김 대표의 성향이 드러난 사례라는 것이다.


문재인, 제때 결정 못 내려 주변에 허무감문재인 대표는 오히려 박 대통령과 비슷한 장형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순한 것 같지만 냉정하고 솔직하다. 한 번 결정한 사안에 대해선 크게 후회하는 법이 없다. 실리보다는 명분을 좇는 스타일로 개혁성이 강하다. 때로는 명분을 고집하다 실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최근 당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비판 세력을 끌어안기보다는 제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불통 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처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사로 잡힌 이미지로 비치는 적이 많다”고 진단했다.


 둘 사이의 차이점도 있다. 박 대통령은 강인한 돌파형의 장형 리더십이지만 문 대표는 갈등을 조정하려는 평화적인 성향이 강한 장형 리더십을 갖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표의 이미지에 대해 ‘평화적’(1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를 낙천적(16%)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울산·경남과 40대에서는 문 대표를 머리형 리더, 즉 ‘똑똑한 변호사’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문 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물줄기를 바꾸기보다는 흐름을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때때로 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해 주변을 허무하게 한다. 문 대표 스스로도 지난 7월 당내 ‘셀프 디스(자기비판)’ 캠페인 당시 “30년 동안 인권 변호사로 지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만 익숙해졌다”며 “당 대표가 돼서도 이를 버리지 못해 많은 사람이 답답해한다”며 반성한 바 있다.


 외국 지도자 중에선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영화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커스가 문 대표의 유형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에서 비슷한 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 동물과 비교하면 ‘코끼리’다. 코끼리는 유순한 것 같아도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땐 아군이라도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감추어져 있는 감정, 관리해야 하는 감정은 박 대통령처럼 ‘분노’다.


 특정한 사안에 자신의 생각이 한번 꽂히면 잘 헤어나지 못하는 특징이 분노와 결합할 때 통제가 안 되는 것이 단점이다. 그렇기에 성과를 내고 효율을 중시하는 참모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유형에 속하는 머리형의 경우 대표적인 정치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천재 음악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도 이 유형에 속한다.  성향 맞는 김-문, 전략적 제휴 가능정치 국면마다 서로 경쟁하고 때론 협력해야 할 세 사람의 궁합은 어떨까.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김 대표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누가 이기든 둘 다 심한 내상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급적 싸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남은 임기 동안 당·청 간에 파국을 피하려면 정례 협의체와 같은 완충지대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반면 실용적인 김 대표와 조정을 중시하는 성향인 문 대표는 전략적 제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추석 연휴에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전격 합의한 것만 봐도 그렇다. 각자 가져가려는 빵, 다시 말해 정치적 이득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 또한 어느 선까지는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작은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문 대표가 균형과 조화를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두 사람의 정치적 협상은 국민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박 대통령과 문 대표는 서로 닮았으면서도 한편으론 동전의 앞뒷면 같은 존재다. 박 대통령의 강점(강인함)이 문 대표의 약점(나약함)이고, 문 대표의 강점(낙천성)이 박 대통령의 약점(의구심)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논쟁은 명분을 중요시하는 박 대통령과 문 대표 모두에게 타협할 수 없는 이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양측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해법을 찾기보다는 일방통행식 주장만 쏟아내고 있다”며 “논쟁이 내년 총선 때까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소모적인 이념 전쟁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천권필 기자?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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