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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에서 서빙과 설명까지 셰프가 직접 책임지는 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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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28면

한우 육회.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기 아까울 정도다. 양파 안에 육회를 채워 넣었다. 식용 연잎인 한련화 잎을 곁들여 경쾌한 맛을 더했고, 부드러우면서 매콤한 맛을 내주는 소스와 함께 준비했다.

우리나라 음식은 수준이 아주 높다. 특히 고급 음식에서는 이미 전 세계에서 일류 급이다. 이렇게 수준 높고 맛있는 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다. 해외 여행을 300번 넘게 다니면서 각국의 내로라하는 음식점을 숱하게 다녀본 사람의 결론이다.


유명 미식평가기관인 ‘미슐랭’이 일본에서 평가를 시작하고 전 세계가 놀랐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높은 평가를 받는 음식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였다. 심지어 최고 등급인 3스타로 평가된 레스토랑이 미슐랭의 본토인 프랑스보다 더 많았다. 그만큼 일본의 음식 수준이 높았다는 얘기다. 미슐랭이 우리나라에서도 평가를 시작하게 된다면 아마도 전 세계가 또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미식의 역사는 짧다. 맛을 즐기기 위해 먹을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이 얼마 안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온 세련된 음식 문화의 바탕 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빠르게 이루어낸 우리 특유의 열정과 근면성이 더해지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유달리 까다로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입맛도 한몫 거들었다.


우리의 음식 실력은 뛰어난데 사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음식을 서빙하는 서버(Server)의 수준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음식이 손님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외국의 유명 레스토랑에 갈 때면 서버의 세련된 매너와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직업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낮고 급여도 대부분 ‘알바’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게 수준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우리의 음식 실력에 비하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프라이빗(Private) 133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33 전화 02-722-0160 휴일은 따로 없다. 규모가 작아서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이층은 8-12명 정도의 모임을 하기에 아주 좋다. 점심 4코스요리 4만원, 저녁 7코스요리 8만5000원.

서울 삼청동에 올해 문을 연 ‘프라이빗 133’이라는 레스토랑은 바로 이런 고민 때문에 아예 셰프가 직접 서빙까지 하는 컨셉트로 방향을 잡았다. 셰프가 직접 서빙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정성을 다해 자신의 음식을 설명하게 된다. 전문성은 물론이다. 심지어 셰프의 의도대로 음식이 가장 맛있게 보이는 각도로 서빙하는 것까지 가능해 진다.


이곳은 1~2층 합해 테이블이 달랑 3개 밖에 없는 작은 가정집 규모의 레스토랑이다. 그래서 이름도 ‘프라이빗(Private)’이라고 지었다. 장경원 헤드셰프(32)를 포함해 모두 6명의 셰프가 요리와 서빙을 한다. 장 셰프는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대학 전공을 포함, 10년이 넘도록 한국은 물론 미국·캐나다의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아온 실력파다. 이런 능력을 높이 산 분이 투자를 했고 장 셰프가 전권을 갖고 요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이곳 요리는 특별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 요리다. 한식·이탈리아식·프랑스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메뉴로 구성된 코스 요리만 한다. 매일 연구를 하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코스 내용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조금씩 바뀌어 간다.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수준 높은 요리여서 황송한 느낌이 들 정도다. 당연히 맛도 훌륭하다.


‘한우 육회’라는 메뉴에 대한 셰프의 설명을 들어보자. “양파 안쪽에 육회를 채웠습니다. 육회는 한우 암소의 꾸리살을 사용합니다. 지방이 적고 운동량이 많은 부위여서 식감과 육향이 좋습니다. 후추와 소금 그리고 식초로 간을 한 다음에 숯 향을 입힌 오일로 살짝 버무렸습니다. 차가운 육회지만 숯불로 구운 향이 나도록 해서 더 맛있게 드시도록 한 것입니다. 양파는 고기 지방을 따로 떼어내 그것으로 천천히 익혔습니다. 쇠고기 향이 배어 들면서 육회와 잘 어울립니다. 아무래도 맛이 좀 무거워서 식용으로 쓰이는 한련화 잎을 함께 곁들였습니다. 후추향이 나서 같이 드시면 입맛을 경쾌하게 해줍니다. 노란색 소스는 고추를 발효시켜 마요네즈를 섞은 것입니다. 찍어 드시면 매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육회와 잘 어울려서 더 풍부한 맛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코스 내내 이런 식의 설명이 계속된다. 맛도 좋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성의 있는 설명을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공연을 즐기는 느낌이라 모두 일곱 가지에 이르는 긴 저녁코스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에는 또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하면서 식사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세 시간이나 지나 있다. 멋진 음식 탐험이다. 너무 설명이 정성스럽고 맛이 있어서 배가 불러도 음식을 남길 수 없는 것이 함정인 것만 빼면. 내 점수는 별 넷이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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