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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정책 대신 '담배 위해감축 정책' 필요…더 해로운 담배에 더 많은 세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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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세가 인상된 지 9개월이 지났다. 애초 보건복지부는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성인 남성 흡연율이 7%포인트 가량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가격 인상에 따른 금연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7월 공장 반출 기준 담배 판매량은 3억4000만 갑으로 최근 3년 월평균 판매량(3억6200만 갑)과 큰 차이가 없다. 최근엔 금연 치료를 받는 흡연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후속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터뷰]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10명 금연하면 한 달 만에 8명 실패
'흡연=질병, 치료=금연' 이분법 안돼
무조건 금연 강요는 효과 떨어져
담배 위해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최근 중앙SUNDAY와 만난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무조건 금연을 강요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흡연자가 담배 위해요소를 서서히 줄여갈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담배 과세체계에 위험요소 감축 여부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더 해로운 담배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니코틴 등 위해물질을 많이 함유할수록 세율이 높아진다면 흡연자들이 가격 부담 때문에라도 유해 성분이 적고 중독성이 낮은 담배를 선택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0년 만에 담뱃값을 80% 가량 올렸는데도 흡연율은 제자리걸음이다.

"담배를 끊는 것은 비흡연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10명이 금연을 시작하면 8명은 한 달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한 달을 참아도 6개월 후에는 다시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크다. 암환자의 53%가 암진단을 받고도 흡연을 계속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책은 금연 실패의 원인을 흡연자에게 돌리고 있다. '흡연은 질병, 치료는 금연'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실질적으로 흡연율을 감소시키기 어렵고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목표도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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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금연 정책을 어떻게 바꿔야하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금연이 건강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성공률이 낮아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그 방법을 '담배 위해감축(Harm Reduction)'을 통해 찾고 있다. 우리나라도 무조건 금연을 강요하기보다는 담배에 함유된 위해물질을 서서히 줄여갈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담배 위해감축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뒤처져있는 상태다. 지난달 대한보건협회 산하 '대한보건포럼'에서 '담배 위해감축과 보건정책상 함의'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앞으로 관련 연구가 더욱 활성화하길 기대한다."

-'담배 위해감축'에 대해 설명해달라.

"미국 의학한림원(Institute of Medicine)에서는 '담배와 니코틴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으면서 위해를 최소화해 총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서 담배를 끊고 싶지 않거나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체내의 니코틴을 최저수준으로 유지시켜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과음하는 사람에게 단번에 술을 끊게 하기보다는 1주일에 한두 잔으로 절주하도록 유도해 점차 금주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담배 위해감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국제 위해감축협회(Harm Reduction International)나 캐나다 담배위해감축협회(Tobacco Harm Reduction Association of Canada), 그리고 미국의 일부 민간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흡연 인구가 약 10억 명인데 매년 500만 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이 중 본인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간접흡연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도 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결핵, 에이즈, 말라리아보다 위험한 것이 흡연인 셈이다. 담배 위해감축을 연구하는 단체들은 즉각적인 금연을 유도하는 것은 실효성이 낮다고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위해감축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쓸 수 있나.

"담배 위해감축의 범주는 크게 완전 금연, 담배제품 사용, 약물 처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약물 처리는 니코틴 패치 등을 활용해 흡연량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가장 주요한 담배 위해감축 수단은 바로 담배의 위험요소를 감소시킨 담배제품(tobacco product)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자담배, 연기 없는 담배, 니코틴 없는 궐련 등이 있다. 전자담배는 궐련담배보다 위해성이 95% 정도 낮고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전자담배는 연소과정도 없기 때문에 궐련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담배에 대한 위해성 논란도 있다.

"그렇다. 지금은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고 연구 실적도 미비하다. 전자담배는 흡연으로 인한 위해성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연구를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세분화된 품질 기준과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전자담배는 세금부과에 대한 체계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전자담배뿐 아니라 모든 담배류 과세에 위해감축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더 해로운 담배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니코틴 함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관련 시스템 구축과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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