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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두차례 납치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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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현직 마약반 형사가 두차례나 납치강도 범행을 하다 붙잡힌 어이없는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그를 붙잡은 경찰은 그가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무직자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20일 오전 1시쯤 서울 양천구 신정동 P아파트 앞길에서 귀가하던 금융 대부업자 金모(32)씨가 갑자기 나타난 괴한 5명에게 납치를 당했다. 승합차에 강제로 태워진 金씨는 충남 당진군의 한 농가로 끌려가 갖고 있던 현금.수표 등 6천8백만원 상당을 빼앗겼다.

범인들은 이어 金씨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으로 35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金씨는 나흘 뒤 감시 소홀을 틈타 탈출해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달 8일 수원에서 일당 중 한명인 韓모(36)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韓씨가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계 마약반 소속 경사였음을 파악했으나 이를 감춘 채 사건을 처리했다. 韓씨는 범행 다음날인 4월 21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고 잠적한 상태였다.

韓씨는 신정동 납치범행 닷새 전인 4월 15일에도 일당과 함께 똑같은 범행을 기도했다. 당일 오후 11시쯤 송파구 방이동에서 증권브로커 金모(34)씨를 납치하려다 金씨가 소리치며 저항,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각되자 金씨의 서류가방과 휴대전화 2개를 빼앗아 달아났다.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송파경찰서는 18일 범인 중 강모(30)씨 등 2명이 자수하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송파서는 보도자료에 이미 양천서에 구속된 韓씨의 직업을 '무직'으로 기재했다.

송파서 측은 뒤늦게 韓씨가 경찰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양천서에서 수사 자료를 통보받을 때 韓씨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해 그런줄로만 알았다"고 해명했다. 양천서 수사관계자는 "5월 8일 검거 당시 韓씨가 이미 사표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무직이라고 기재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수배 중인 증권브로커 출신 주범 조모(45)씨는 평소 증권가에서 소위 단타 매매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 투자가들을 범행 대상으로 골라 범행을 주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韓씨는 "급하게 돈이 필요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조씨 등과는 고향 선.후배 사이로 강남서 근무 중 사건처리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조씨는 韓씨에게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납치해 10억원을 받아내자"고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은 사건의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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