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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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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완독할 기세로 산 책 중에 『더 클라우드 북(The Cloud Book)』이 있다. 요즘 대세인 IT의 클라우드에 대한 것이겠다고? 아니다. 기상 현상으로서 구름 얘기다. 보다 정확하게는 ‘구름을 통해 하늘을 어떻게 이해할까’다.

 스트라터스(층운)·큐물러스(적운)·시러스(권운)에서 시작해 노틸루선트 클라우드(야광운)까지 온갖 이름에 질려 아예 책을 덮었다. UFO 모양의 구름을 두고 ‘알토큐물러스 렌티큘라리스’(렌즈 고적운)라고 한다는 데야, 하늘을 이해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개를 들곤 하는데 이곳에선 270도 이상 가능한 조망 덕분이다. 손바닥만 한 하늘에선 못 느끼던 다채로움과 변화무쌍함이 있다. 이럴 땐 발췌독 지식이 요긴하다. “잘생긴 구름이다.” 그러곤 깨닫는다. 영국 풍경화에 등장하는 구름이 상상의 소산이 아닌 리얼리즘의 산물이라고 말이다. 실제 19세기 풍경화가 컨스터블은 100여 종을 연구했고 “구름의 사나이”라고 자처했다.

 멕시코 만류의 항시적 영향권에 있는 대서양 연안의 위도 51도 섬나라 영국에 산다는 건 한반도적 기상 경험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 날씨를 보아하니 맑겠다”고 말할 순 있으나 진실과는 별 관련이 없는 혼잣말일 수 있다. 기상청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제의 날씨를 기준으로 오늘을 판단하는 건 더 위험한 일이다. “하루에도 4계절이 다 있다”고 한다.

 겨울철 10도면 우리는 포근하다고 판단한다. 이곳에선 따뜻할 수도, 엄청 추울 수도 있다. 햇볕 여부에 달렸다. 겨울철 습도도 여름철 습도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는 반팔을 입고 있는데 누군가는 코트를 입는 날도 흔하다. 따라서 날씨는 빈도의 문제다. 반팔 대 두꺼운 옷의 비율 말이다. 이러니 “철 지난 옷”이란 개념도 불필요하다. 영국 언론인인 제러미 팩스맨은 이런 기후를 두고 “대륙과 대양의 언저리에 존재한다는 건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불확실성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1년여 살았을 뿐이니 머리로 이해할 뿐이다. 한반도적 습관을 반복했다가 낭패를 겪는 일도 여전하다. 먹거리만 신토불이(身土不二)인 게 아니었다. 한국의 오해의 소지가 없게 명료한, 그래서 확신을 주는 사계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을은 더더군다나다. 이리저리 어수선한 일이 많다. 그래도 가을이다. 즐기시라.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