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는 '청와대 빽'… 수십억 대출청탁서 마약 통관 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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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단 신고부터 해주세요. 모두 거짓말입니다."

청와대는 이런 문구의 대문짝만한 신문 광고라도 내고 싶단다. 워낙 청와대를 사칭하는 사기사건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였다. 부산에 사는 39세의 金모씨는 조흥은행의 부산 모지점 대출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청와대 이호철 민정비서관인데 나와 잘아는 사람을 보낼테니 만나서 얘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해주시오"라고 말했다.

金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하곤 청와대 소개로 온 사람이라고 속이고 40억원 상당의 담보대출을 부탁했다.

은행 측은 "이곳은 담당 지점이 아니니 서면지점을 찾아가 상의해달라"며 서면지점을 소개해주었다. 金씨가 찾아간 서면지점에서는 이를 수상히 여겨 "그 같은 대출은 어렵다"고 일단 金씨를 돌려보냈다. 이후 조흥은행 고위 관계자가 청와대 측에 확인전화를 걸어 사칭범임을 알아냈다.

즉각 범인의 신원파악에 나선 부산지검이 최근 金씨를 검거했다. 그러나 대출신청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 터라 사기죄의 적용이 어려워 조사 후 경고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청와대 측은 전했다.

범인 金씨는 공무원 자격 사칭과 변호사법 위반의 전과도 갖고 있었다. 대출사기뿐 아니다. 지난달에는 한 마약사범이 역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사칭하며 , 마약 통관을 시도했다. 법무부가 정보를 입수해 그 범인도 잡히고 말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그동안 얼굴도,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석.비서관들이 청와대로 들어오고 난 뒤 청와대 사칭 사기가 늘어났다"며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자주 사칭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3월에는 대구의 한 수입 대행업자가 역시 민정비서관을 사칭, 부산세관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입 참깨의 통관을 시도하다 세관 측이 청와대에 확인하면서 들통나 검거됐다.

같은 달에는 부산 C병원의 계약직 영업이사가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을 사칭하며 부산항운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노조원들의 건강진단을 기존의 H병원에서 C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직원이라며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는 1백% 사칭으로 무조건 간주해 달라"며 "신고는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의 '인터넷신문고'코너를 이용하거나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곧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이관된다"고 밝혔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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