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구 획정안 마감 못 지키면 국민이 용납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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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선관위 산하 독립기구인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내년 4·13 총선 의석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법정 시한이 8일밖에 남지 않았다. 획정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최종 합의에 실패해 법정 시한 준수에 적신호가 켜졌다. 위원들은 지역구 의석을 현행대로 246석으로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2석을 영남·호남에 줄지, 영남·강원에 줄지를 놓고 논쟁을 거듭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이 크다. 여야는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고정한다는 데만 잠정 동의했을 뿐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같은 기초적인 기준조차 합의를 보지 못했다. 추석 연휴 중 부산에서 전격 회동한 김무성·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마감이 코앞으로 닥친 선거구 획정은 제쳐놓고 자신들의 관심사인 공천제도만 잠정 합의했다.

 여야는 지역구 의석을 246석으로 한다는 획정위 안에도 뒤늦게 난리를 치고 있다. 획정위 안에 따르면 수도권 선거구는 10개가량 늘어나고 영남(3석)·호남(5석)·강원(1석)·충남(1석) 등 지방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에 여당은 비례대표 수를 줄여 지방 지역구를 지켜야 한다고 딴지를 걸고 야당은 비례대표를 단 한 석도 줄일 수 없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선거구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 농어촌 의원들은 “최종안 발표를 연기하라”며 획정위를 압박하고 있다. 법정 시한을 무시하고 내 지역구는 무조건 살리겠다는 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제 할 일을 게을리한 정치권이 외부 용역까지 훼방 놓는 꼴이다.

 여야가 시간만 끌며 합의를 보지 못하는 속셈은 뻔하다. 겉으론 농어촌 대표성 유지나 소수자 배려 같은 구실을 대지만 실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려는 정치적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번 선거구 재획정은 지역구마다 3대 1 넘게 벌어진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여 선거구 간 형평성과 인구 대표성을 높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여야는 이제라도 당리당략을 버리고 헌재 결정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마침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가 5일 만나 선거구 획정을 논의키로 했다. 선거구 간 형평성을 높이면서 농어촌 대표성 훼손을 줄일 묘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 합의를 끌어내기 바란다. 그래야만 획정위도 법정 마감 시한인 13일까지 최종 획정안을 정할 수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에 실패하면 다음달13일까지 확정돼야 할 공직선거법 개정이 시한을 넘길 우려가 커진다. 선거구 재획정 때마다 여야는 선거가 코앞에 닥쳐서야 나눠먹기식 졸속 합의를 하곤 했다. 민주화 이후 여덟 번째인 내년 총선마저 그런 흑역사가 되풀이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