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글 폰트 디자인의 세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김재의 폰트 디자이너가 제작된 폰트의 완성도를 점검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typo란 그리스어로 ‘글자’를 뜻하고 graphy는 ‘표현하다’라는 뜻의 접미사입니다. 말 그대로 타이포그래피란 글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활동이에요. 소중이 폰트 제작 기업 윤디자인연구소에서 만난 타이포그래피는 잘 만든 요리 같기도 했습니다.

초성·중성·종성 모아쓰는 한글
폰트 디자인에 다양한 멋 더해 전통 한글 글꼴은 네모틀이 기본이죠

폰트? 글꼴? 타이포그래피? 용어가 너무 어려워요

사전적으로 글꼴이란 ‘글자의 모양’이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보통 캘리그래피 같은 손글씨가 아닌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 컴퓨터 모니터 위의 글자 등 정형화된 틀이 있는 활자의 모양을 지칭할 때 사용하죠. 폰트(font)란 단어의 뜻은 여기서 범위를 조금 줄여 이해하면 됩니다. 디지털 디바이스, 예를 들어 컴퓨터·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서 사용되는 글자들의 모양을 폰트라고 하거든요. 여러분도 워드프로세서인 ‘한글 2010’ 등을 통해 문서 작업을 할 때 궁서체·명조체 등으로 글자의 모양을 지정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에서 사용되면서 궁서체·명조체처럼 뚜렷한 형태적 특징이 있는 글자 한 벌을 폰트라고 얘기합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이들 글자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 문화에 대해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한다고 가정합시다. 어울릴 만한 폰트를 떠올려 보니 붓글씨 느낌의 고풍스런 글자가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컴퓨터에 저장된 폰트를 확인하니 고딕체가 전부군요. 고딕체는 글자의 획이 모두 직선으로 이뤄져 현대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우리 포스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죠? 이럴 때 타이포그래피의 힘이 빛을 발합니다. 펜을 들고 고딕체로 적힌 글자 끝에 돌기(타이포그래피 용어로 세리프)들을 그려봅시다. 그럼 붓글씨 분위기의 명조체가 탄생하죠. 우리가 만들려는 포스터와도 잘 어울리는 폰트네요. 이처럼 글자의 형태를 원하는 이미지에 맞게 꾸미는 작업을 타이포그래피라고 합니다. 윤디자인연구소는 그중 폰트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곳이고요.

기사 이미지

폰트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자, 그럼 이제 우리도 타이포그래피를 해봅시다. 색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을 원하는 형태로 꾸미면 그것 역시 훌륭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입니다. 하지만 펜으로 직접 그릴 수 없는 컴퓨터 속 폰트들은 어떻게 디자인할까요? 그 방법을 윤디자인연구소가 개발한 폰트인 ‘독도체’ 제작 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할게요.

1단계 폰트의 콘셉트 정하기 흔히 좋은 디자인이란 디자이너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독도체는 좋은 디자인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체의 형태만 봐도 망망대해에 우두커니 서있는 독도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독도체의 디자이너들은 외로운 섬 독도의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폰트의 콘셉트를 ‘바위’로 정했습니다. 바위가 풍기는 고독한 분위기가 독도의 이미지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폰트 디자인의 첫 단계에선 폰트의 형태가 지향할 전반적인 콘셉트가 정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도 읽고, 해외 서체도 참고하면서 수개월의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2단계 스케치를 컴퓨터로 옮기기 일단 ‘바위’라는 콘셉트에 맞는 글자들을 손으로 죽 써보는 게 좋겠죠? 폰트 디자이너들은 이 과정을 ‘글자를 스케치한다’고 말합니다. 자음 ‘ㄱ’부터 ‘ㅎ’까지, 모음 ‘ㅏ’에서 ‘ㅣ’까지 혹은 ‘가갸거겨고교구규…’ 등 비슷한 형태의 글자들을 죽 써보며 모양을 구체화하는 겁니다. 어느 정도 폰트의 모양이 명확해지면 스케치를 ‘폰트랩’ 등의 컴퓨터 폰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옮깁니다. 독도체 같이 손글씨를 본 딴 폰트는 스캐너를 이용해 옮기지만 보통은 디자이너들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직접 그립니다.

3단계 단어, 문장으로 글자들의 조화 확인하기 우리는 글자를 의미가 있는 단어·문장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개별 글자의 디자인이 완성됐다고 해도 끝이 아닙니다. 단어 혹은 문장 형태로 글자들을 배열했을 때 어색하지 않아야 폰트 디자인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죠. 이 단계에서 디자이너들은 제작한 폰트로 다양한 단어·문장을 적은 후 출력합니다. 그 다음 개별 글자들이 일정한 크기를 지녔는지, 사용된 획들은 동일한 굵기로 이뤄졌는지 등을 따지며 최종적으론 글자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폰트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폰트의 질은 확인 과정을 얼마나 꼼꼼하게 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고 하네요.

4단계 오·탈자 점검하기 마지막으로 미세한 실수들을 잡아내는 작업이 남았습니다. 완성된 폰트 한 벌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빠진 글자나 잘못 표기된 글자가 있는지 혹은 디자인에 오류가 있는 글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오·탈자 점검까지 마친 폰트는 실제 출판물 제작에 사용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출판물로 조판 점검까지 마치면 한 벌의 폰트 디자인이 마무리됩니다.

기사 이미지

[2. 윤디자인연구소의 ‘한솔아름체’는 윤곽이 곡선으로 이뤄져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을 준다. 3. 김영아 폰트 디자이너가 스케치 한 ‘한솔아름체’의 도안.]

맛있는 디자인이 가능한 한글

그렇다면 폰트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한글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윤디자인연구소의 정유권 디자이너는 “한글은 ‘맛있는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한글에는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글자를 완성시키는 ‘모아쓰기’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글자들을 죽 나열하는 영문 디자인에 비해 한글 디자인에선 글자의 다양한 형태 변형이 가능합니다. 초성·중성·종성 사이의 간격, 받침의 유무, 사용된 자음·모음의 형태적 특성 등을 고려해 글자 조합을 하다 보면 한 글자 안에서도 여러 가지 디자인들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이처럼 한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종종 헤어 나올 수 없는 한글의 맛에 푹 빠진다고 하네요.

기사 이미지

[한글 활자의 시대별 변화. 자료 국립한글박물관 ‘꼴 꼴 꼴 한글디자인’전.]

글=이연경 인턴기자 to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취재=이화진(서울 세명초 6)?송준협(경기 신백현초 6) 학생기자, 김민성(경기 신백현초 6) 독자

▶소년중앙 페이스북
▶소년중앙 지면 보기
▶소년중앙 구독 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