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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발재간에 토트넘이 반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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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27면

토트넘의 손흥민은 박지성을 뛰어 넘을 한국 축구의 새로운 간판 스타로 떠올랐다. 사진은 지난 20일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 [게티 이미지]

손샤인(Son shines·손이 빛나다), 수퍼 손데이(Super Son-day), 마이 손(My Son·내 아들).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손흥민(23)의 성(姓)인 ‘손’ 과 발음이 비슷한 태양(sun), 아들(son) 등의 단어를 사용한 중의적인 표현이다.


지난달 28일 아시아 축구 선수론 역대 최고액인 3000만유로(약 400억원)의 이적료에 레버쿠젠(독일)을 떠나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 한 달 만에 ‘축구 종가’ 영국에서 펄펄 날고 있다. 지난 13일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손흥민은 18일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카라바흐 FK(아제르바이잔)와의 경기에서 2골, 20일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팀의 결승골(1-0 승)로 홈 팬들을 사로잡았다. 손흥민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시대를 연 박지성(34·은퇴)을 뛰어넘을 한국 축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포체티노 감독, 일찌감치 손흥민 주시토트넘은 1882년 크리켓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팀이다. 133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구단이다. 홋스퍼(hotspur)라는 팀 이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헨리 4세』에 등장하는 기사 헨리 퍼시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헨리 4세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키다 전사한 퍼시의 별명은 ‘홋스퍼’였다. 홋스퍼란 ‘충동적인 무모한 사람’이란 뜻인데 ‘정의감 가득한 다혈질’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상징 문양에도 의미가 담겼다. 공 위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앉아 있는 새는 코크럴(cockerel·어린 수탉)이다. 코크럴은 ‘싸우기 좋아하는 젊은이’라는 뜻도 있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토트넘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하부 리그로 강등된 적도 없었다. 올 시즌 개막 직후 4경기에서 토트넘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개막 4경기에서 단 3골(평균 0.75골)에 그치며 3무1패로 부진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5위에 올랐던 공격력(38경기 58골·평균 1.52골)은 온데간데 없었다.


지난 시즌부터 토트넘을 맡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43) 감독이 새롭게 선택한 카드는 손흥민이었다. 2009년 스페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포체티노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떠오르는 젊은 지도자다. 2013~14 시즌 잉글랜드 무대에 뛰어든 포체티노 감독은 만년 중하위권 팀 사우샘프턴을 8위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4~2015 시즌엔 토트넘을 5위에 올려 놓았다. 잠재력 있는 젊은 선수들을 좋아하는 포체티노 감독은 레버쿠젠에서 뛰던 손흥민을 3~4년 전부터 눈여겨 봤다.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고, 발이 빠른 그의 잠재력에 주목한 것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전방의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할 수 있는 건 손흥민의 큰 장점”이라고 했다. 분데스리가에서 165경기 49골(컵대회 포함)을 터뜨린 득점력도 손흥민의 매력이었다.


손흥민 “보여줄게 많다” 자신감손흥민은 최근 인터뷰에서 “포체티노 감독 밑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두 번째 경기부터 자신 있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상대 진영을 폭넓게 움직이면서 수비진 사이를 휘젓고 다닌 덕분에 토트넘의 경기력도 업그레이드됐다. 손흥민의 합류 이후 토트넘은 5골을 기록하며 3연승을 달렸다.


손흥민의 위상도 단번에 높아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포체티노 감독이 토트넘의 새 영웅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공영방송 BBC는 ‘손흥민은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 빅 히트 상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별명을 지어주는 매체도 등장했다. 일간지 미러는 21일 ‘손흥민의 이름은 애칭을 만들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후보 10개를 제시한 뒤 독자 투표를 진행했다. 비틀스의 노래 ‘Here Comes The SUN(태양이 떠오른다)’에 빗댄 ‘Here Comes The SON(손이 떠오른다)’ ‘Go on my Son(내 아들 힘내라)’ 등이 후보였다.


손흥민은 실력뿐만 아니라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지난 18일 김밥·잡채·김치·불고기 등 한식을 구단 트레이닝센터에 가져와 동료들과 함께 즐겼다. 그는 “좋은 팀에 합류한 기념으로 동료들에게 한식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한식 메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손흥민은 영국에서의 빠른 정착을 위해 통역사 없이 직접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언론과 인터뷰도 영어로 한다.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미드필더 델레 알리(19)는 “손은 어울리기 쉽고, 좋은 사람”이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손흥민은 2005년부터 일곱 시즌동안 맨유에서 뛰었던 박지성의 경기를 TV로 보면서 프리미어리거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를 개척한 지 10년 만에 한국 축구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팬들은 발 빠른 그의 모습을 보며 ‘토트넘의 영웅’ 가레스 베일(26·레알 마드리드)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한다. 베일은 거침없는 문전 침투로 2007년부터 6시즌동안 146경기 42골을 넣었다. 2013년 9월 역대 축구선수 최고의 이적료(약 8500만파운드·1550억원)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했다.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맡고 있는 장지현 해설위원은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이 베일의 역할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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