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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에도 로열층 … 아래쪽의 10배 2000만~3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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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내 이름은 김영식(53·가명).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258만㎡ 규모의 광활한 땅이 내 근무지다. 4만여 기의 봉분을 비롯한 봉안시설(납골당)과 자연장지에 저마다 사연을 가진 15만여 위(位)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그렇다, 나는 그들을 지키고 돌보는 경력 30년차의 ‘묘지기’다.

30년차 묘지기가 본 성묘 문화

유골함 위치 따라 가격 차
위 500만~600만, 아래 200만~300만원
시립은 순서대로 배정, 값도 똑같아

화장률 99년 30%서 87%로
폭우로 묘지 훼손 후 봉안시설 건설
야간·비오는 날씨에도 성묘 인파

 난 오늘도 출근길에 오른다. 우리에게 추석 연휴란 없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10만 명 이상 몰리는 성묘객의 손과 발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일터인 서울시립묘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국지도(국가지원지방도로) 78호선은 추석 연휴 기간 성묘와 벌초 차량으로 인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에 하루 4만 대 이상의 차량이 몰리면서 극심한 정체를 빚는다. 성묘객 숫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30년째 변함없는 추석 성묘 풍경이다.

 하지만 성묘 문화의 진화는 참 빠르다.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면서다. 1998년 8월 경기 북부지역에 쏟아진 500㎜의 폭우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산사태로 일부 묘역이 매몰되면서 4000여 기의 묘가 훼손됐다. 시립묘지의 매장이 중단됐고 용미리2 묘지엔 국내 첫 대형 봉안시설이 건설됐다. 이는 전국 화장장과 봉안시설의 확산을 불러왔다. 1999년 30%였던 화장 비율이 2010년 말 70%로 급증했고 최근엔 87%에 이른다고 할 정도니까.

 국내에 들여온 봉안시설은 미국의 납골당을 벤치마킹했다. 새로운 외국식 봉안시설의 등장이 낯설어서였을까. 봉안시설의 국내 정착은 전통 장법(葬法)과의 마찰을 불러왔다. 고인을 화장한 뒤 봉안시설에 모셔놓고 보니 제례를 지낼 공간이 없었다. 0.25평 크기의, 촘촘하게 들어선 작은 유골함을 앞에 두고선 절을 하기도, 제물을 올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묘 앞에서 성묘를 하던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봉안시설 내부에 향 대신 담뱃불을 붙여 올리거나 구석구석 술을 뿌렸다. 묘지 앞에 제물을 차리고 향을 피우며 절을 하는 관습까지 한번에 바꾸는 것은 어려웠으리라. 외래 문화인 봉안시설과 전통 관습의 습합(習合·절충)이 시작됐다. 봉안시설 주변에 제례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봉안시설에서 고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성묘객들은 제례 공간으로 이동해 제를 올렸다. 추석 때면 공동 제례실 앞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길게 줄을 서 자신의 제례 순서를 기다리는 성묘객들은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용미리의 진풍경이다. 그래도 봉안시설 내부 곳곳엔 술을 뿌린 자국이 여전하다. 성묘 문화는 바뀌고 있지만 고인을 가까이서 추모하려는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 세대가 지나면 이마저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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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 봉안시설은 야간 성묘라는 새로운 풍속도 불러왔다. 오후 6시면 문을 닫아야 하지만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달려온 성묘객들의 발길을 차마 막을 수는 없더라. 봉안시설 등장 이전만 해도 늦은 시간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객은 찾기 어려웠다. 이제 밤 10시가 넘어 성묘가 끝나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 비 내리는 궂은 날씨도 더 이상 성묘객의 걸림돌이 아니다. 지붕 있는 봉안시설이 유실 걱정도, 빗속 성묘도 필요 없도록 성묘 문화를 바뀌어 놨으니까. 봉안시설을 찾는 성묘객의 손에 향 대신 시들지 않는 조화(造花)가 들려 있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각각의 유골함 앞은 1년 내내 변치 않는 꽃으로 가득하다.

 이곳 봉안시설에 있는 3만6945기의 유골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0년 6월 바이러스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댄스 그룹 NRG의 멤버였던 고(故) 김환성의 자리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는 중국 시안에 사는 중국인 팬이 찾아와 2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유골함 앞을 지키다 돌아갔다. 그가 안치된 방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리는 팬들의 편지와 꽃으로 채워져 있다.

 묘지기는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운 건 오직 ‘민원’뿐. 고인은 말이 없지만 자손을 통해 수많은 민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추석 연휴 기간 밀려드는 성묘객의 가슴속엔 품고 있는 민원도 한가득이다. 다 안다. 고인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수많은 민원에 묻혀 혹여 한 명의 마음에라도 상처를 남기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가장 많은 민원은 단연 ‘위치’다. 풍수지리가 봉안시설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봉안시설에도 로열층이 있다. 성묘객이 최고로 꼽는 명당은 눈높이다. 사설 납골당에선 로열층이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한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란다. 봉안시설 위쪽의 경우는 500만~600만원, 아래쪽은 200만~300만원 선에 거래된다고 하니 이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시립 봉안시설은 위치에 엄격하다. 고인이 재벌 총수든 일반인이든 중요치 않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정해진 위치에 순서대로 안치되며 비용도 같다. 묘지기 생활 10년이면 반(半)풍수쟁이가 된다고 했던가. 민원인의 불만을 그냥 넘기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마디씩 거든다. 아래쪽 자리에 불만을 가진 성묘객에겐 “선생님, 아래를 보세요. 모든 사람이 숙이고 인사하지 않습니까?”라며 “지면하고 가까울수록 땅의 기운을 받아 더 좋습니다”라고 한다. 유골함이 위쪽에 있어 불편하다는 민원인에겐 “모두 위쪽을 우러러보지 않습니까. 고인이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끼는 게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불평이 쏙 들어간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의 어머니 마음이 이런 것일까. 그렇지만 로열층은 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고인이 아닌 성묘객 눈높이에 맞춘, 그들만의 편의일 뿐.

 몇 년 전부터는 자연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수목장과 잔디장은 용미리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전통 관습과의 마찰이 생겼다. 나무 한 그루에 24위가 안치되는 수목장은 봉안시설의 전철을 밟고 있다. 나무 주변에서 제례를 올릴 공간이 마땅치 않아 빙 둘러서 인사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져 결국 제례단이 마련됐다. 특히 잔디장의 경우 유골을 땅에 묻고 봤더니 실체가 없어 허전하다는 성묘객의 민원이 잇따랐다. 봉안시설은 그나마 제를 지낼 대상이 남아 있고 수목장은 나무라도 있다. 하지만 잔디장은 지상에 표시를 안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기에 제를 지낼 대상이 애매했던 것이다. 무덤은 표시 기능이 크다. 그런데 잔디장은 작은 봉분마저 없어 성묘객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우리의 장묘 문화는 전통과 편리함의 타협 속에 변해 왔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누구나 겪어야 한다.

 최근엔 대리 성묘나 인터넷 성묘의 등장 등으로 우리의 장묘 문화는 혼돈의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참배 대상은 느는 데 반해 성묘객은 점점 준다. 인간의 수명이 점차 길어지면서 죽음에 대한 슬픔이 희석되고,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유대감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족 간 심리적 거리감은 추석 연휴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숫자 증가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추석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행렬이 이어진다. 도로가 마비되고 민원이 몰려도, 그들을 마주할 수 있는 추석이 반갑다.

 
  ※22일 묘지관리인 김영식(가명)씨와의 인터뷰를 그의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사진촬영과 실명 게재를 원하지 않았다.

 ※도움말 주신 분: 박태호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이용노 서울시설공단 추모시설 운영처장, 유성진 서울시설공단 추모시설 운영부장

글=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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