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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완장 찬 세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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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4·29 재·보선 참패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위를 만들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혁신위 활동이 그제 끝났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이는 혁신 작업이 제도개혁을 넘어 편의적이고 인위적인 양태로 인적 쇄신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그동안 내놓은 제도개혁은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양하다. 중앙위 통과를 둘러싸고 진통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제도개혁이란 것은 당의 추인을 받으면 ‘합당’한 것이 된다. 경선식 최고위원제와 사무총장직의 폐지, 국민공천단이라는 새로운 공천방식, 공직후보자검증위 같은 것은 당이 절차에 따라 승인한 제도개혁이다. 비리 혐의자의 경우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일단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공천심사 개혁안도 마찬가지다. 다른 조항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어쨌거나 이는 당무위원회를 통과한 제도개혁이다. 혁신은 이렇게 제도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혁신위가 막판에 저지른 중요한 잘못은 제도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혁신위는 특정인들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혁신위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대표에게 부산 출마를 요구했다. 정세균·이해찬·문희상·김한길·안철수 의원 등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당을 이끈 대표’들이 열세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은 대선 이후 5연패 수렁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물갈이’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런 필요가 있으니 칼을 휘둘러도 된다고 혁신위는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일은 여야를 막론하고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결과는 정치발전에 역행했다. 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이명박 집권파는 박근혜파에 대해 자의적인 공천학살을 단행했다. 당이 발전하기는커녕 집권 5년 내내 여권의 분란만 이어졌다. 자의적인 인적 쇄신은 효과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원칙에 어긋난다.

 출마 자격만 갖추면 어디에 출마할지는 정치인의 자유다. 더군다나 지역구 선택은 유권자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왜 지목된 6인만 자유를 구속당하고 약속을 어기는 상황을 겪어야 하는가. 특정인의 특정지역 출마가 당에 도움이 된다면 혁신위가 아니라 특정 인사들이 그런 의사를 그저 정치적으로 표명하면 된다.

 조경태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번 혁신안에 대한 중앙위의 의결을 ‘집단적 광기’라고 비판했다. 혁신위는 그를 해당행위자로 지목하면서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그의 언행이 해당행위라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당의 윤리심판원이 다루면 된다. 혁신위가 마치 혁신안의 하나로 그의 징계를 요구하는 건 제도를 넘은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막대한 국고지원을 받는 공당(公黨)이며 10년간 집권했던 주요 정당이다. 공당으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이자 사회에 대한 도덕적 과업이다. 혁신위는 마지막 선을 지키지 못해 ‘완장 찬 세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