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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권력의 ‘추문’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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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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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미시즈 브라운. 19세기 말 영국에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조롱 조였다.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다.

 여왕은 42세에 남편을 잃고 스코틀랜드의 발모랄성에 칩거했다. 공식 행사엔 불참했다. 그의 부재를 대신한 건 추문이었다. 소작농 출신의 술꾼인 하인 존 브라운과의 각별한 친분 때문이다. 비밀결혼설이 돌았다. 대영제국 한창 시절, 국모(國母)로 불리던 이도 ‘말’과 ‘혀’를 피하지 못했다. 영국에 있다 보면 이렇게 쓰고 말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는데, 알고 보면 이는 오랜 전통이다.

 근래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데이비드 캐머런 전기를 두고서다. 보수당의 거액 기부자가 캐머런 총리로부터 좋은 자리를 받지 못한 데 앙심을 품고 썼다고 한다. 주요 내용이 보도됐는데 거기엔 캐머런이 옥스퍼드대 재학 중 한 사교클럽 입회식에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죽은 돼지머리 입 속에 집어넣는 행위를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캐머런과 돼지의 특별한 관계는 이후 SNS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저 키득대기엔 ‘대략난감’한 내용들이 양산됐는데 이른바 ‘피그 게이트’다.

 전례가 있다.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의 일화다. 경쟁자를 상대로 수간(獸姦)한다는 소문을 내라고 지시했고 참모들이 “누가 믿겠느냐”고 반대했으나 “그래도 그놈이 부인하겐 할 수 있다”고 대꾸했다는 얘기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고 말하는 순간 사기꾼이 된 리처드 닉슨 효과를 노린 게다. 정치 네거티브의 고전적이면서 전형적 수법이다.

 이번도 그런 경우였다. 그래도 근거가 있는 줄 알았다. 저자는 그러나 “사실 여부는 모른다. 그저 사람들을 웃게 만들려고 넣은 것”이라고 했다.

 총리실은 발칵 뒤집혔지만 공식 논평을 내진 않았다. 그럴 만했다. 돼지 발언자를 수소문 중이란 풍문도 있다. 우리도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이 달랐다. 캐머런 총리는 보도 당일 저녁 지지자 3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말에 지역구에서 장작을 과도하게 팼더니 등이 아팠다. 의사가 엎드리라면서 ‘등을 찌를 텐데(stab in the back, 뒤통수치다는 의미도 있음) 따끔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 내 하루가 딱 그랬다.”

 오해 또는 몰이해는 권력의 부산물이다. 숙명이다. 오해받았다고 이해 못한다고 권력이 강퍅해지면 주변은 매몰차진다. 달려드는 이들을 매번 죽이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 캐머런은 속이야 어떻든 유머로 대응했다. 이건 우리가 못하는 것이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