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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숨겨도 소용없다…Fatca 포함 90여 개국 정보확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95년 서울에 거주하면서 해외 무역을 통해 큰 재산을 모은 A씨는 해외거래처에서 판매수수료를 받을 때마다 해외계좌에 넣어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금한 입금한 돈은 50억원.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2009년 A씨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에게 해외부동산 취득자금으로 그 돈을 몽땅 넘겨줬다. 물론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올 초. 국세청은 내부 정보수집 체계를 통해 A씨가 거액의 자금을 해외계좌에 은닉해두었다가 자녀의 해외부동산 취득자금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금융정보수집 기술이 발달하면서 국세청은 웬만하면 모든 은닉 자금을 찾아낼 수 있다. 국세청은 최근 A씨에게 자금 미신고 사실을 통보하면서 내년 3월까지 자진신고 기회를 줬다. 기한 내 자신 신고하지 않으면 A씨는 10억원의 불성실 가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국내에 2011년 해외금융계좌 신고 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묻어둔 은닉 자금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공개한 ‘2015년 해외금융계좌 신고 결과’에 따르면 모두 826명이 36조9000억원을 해외 금융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에 비해 신고 인원은 52명 늘어나면서 증가율은 6.7%, 신고 금액은 52.1% 늘어났다. 신고금액 증가액은 12조6000억원에 달했다.

# 선친이 국회의 페이터컴퍼니를 통해 차명보유하던 120억원 규모의 재산을 상속세 신고 없이 국내법인에 우회투자해온 B씨는 ‘검은머리 외국인’의 전형이다. 그는 상속세 신고 없이 2011~2012년 사이 120억원을 물려받았지만 신고를 누락해 23억원의 세금을 탈세할 수 있었다. 그는 특가법상 조세포탈죄에 해당해 무기 징역 또는 포탈세액의 2~5배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교소도에 들어가든지 돈으로 떼우려면 46억~115억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세청은 B씨가 내년 3월 말까지 제공되는 자진신고 기간에 포탈 세금을 납무하면 형사관용을 베풀어 검찰에 고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 같은 관용은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한국 경제가 급속히 덩치를 키운 1990년대부터 해외에 수출자금이나 국내송출 자금을 은닉해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당시는 이를 밝혀낼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금융추적 기법이 발달하면서 먼저 자진신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년부터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숨겨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다음달 1일~내년 3월 말 사이 자진신고기간 중에 신고하는 게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된다. 올해부터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이 발동되고 홍콩·싱가포르 등 90여 개국과의 다자간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을 통한 국제공조 및 정보수집활동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자진납부하지 않은 해외은닉 자금은 끝까지 추적 과세하고 형사고발 하겠다”며 “역외탈세를 돕는 금융·회계 전문가도 조세범처벌법상 '성실신고 방해행위' 규정을 적용해 형사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고를 계획하고 있는 납세자가 신고기간 중에 세무조사 통지를 받아 신고기회가 상실되지 않도록 10월 한 달 동안 ‘자진신고의향서’ 제출 기회도 주기로 했다. 이 기간 중 의향서를 제출하면 이후 세무조사통지를 받더라도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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