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미안, 우승 순간 웃지 못한 안병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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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가운데)은 탁구 스타 출신 아버지 안재형(왼쪽)과 어머니 자오즈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내 대회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 신한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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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열

“제가 금메달 딴 순간보다 더 긴장했어요.”

신한동해오픈 17번 홀까지 동타
노승열, 2m 파 퍼팅 놓쳐 준우승
경기 지켜본 어머니 자오즈민 “내가 금메달 딸 때보다 더 떨려”

 안병훈(24)의 어머니인 탁구 스타 자오즈민(52·중국)은 손에 땀을 쥔 채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20일 인천 베어즈 베스트 청라 골프장(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제31회 신한동해오픈 최종 라운드. 안병훈의 부모뿐 아니라 모든 갤러리가 숨죽이고 지켜볼 정도로 명승부가 벌어졌다. 1991년생 동갑내기 안병훈과 노승열(나이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마지막 홀에서 승부가 갈렸다.

 안병훈은 이날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낚으며 최종 12언더파로 노승열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3년 5개월 만에 한국 팬들 앞에 선 안병훈은 국내 대회 세 번째 출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2m 파 퍼트를 놓치며 우승을 내준 노승열은 코리안투어에서만 네 번째 준우승에 머물렀다. 노승열은 이번 대회에서 3퍼트를 한 차례 했다. 그게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나왔다.

 안병훈과 노승열은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연습그린에서 퍼터를 바꿔가면서 칠 정도로 친한 사이다. 때문에 이날 최종라운드에서도 농담 같은 심리전이 벌어졌다. 드라이브 샷이 멀리 나가면 “살살 좀 쳐라”라며 서로 농을 건넸다. 3번 홀에서 4번 홀로 넘어갈 때 안병훈은 “내가 친 거 보고도 그렇게 퍼트를 세게 치냐”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노승열은 “네가 친 것 보고 그대로 따라 한 거야”라고 맞장구치며 웃었다. 둘은 3번 홀에서 까다로운 파 퍼트를 모두 성공해 기분이 좋았다.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한 안병훈과 노승열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답게 1만4700명의 관중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노승열이 제리처럼 달아나면 안병훈이 톰처럼 쫓아가는 양상으로 라운드가 진행됐다. 노승열이 8번째 홀까지 2타 차 단독선두를 달렸다. 안병훈은 9번 홀(파4)에서 3m 버디를 낚아 1타 차로 좁혔다.

 후반 첫 홀에서 노승열이 보기를 하면서 동타가 됐다. 둘은 이후 버디 2개씩을 낚으며 17번 홀까지 12언더파 공동선두를 유지했다. 마지막 18번 홀 티박스에서 노승열이 갤러리의 소리에 어드레스를 한 번 풀었다가 다시 티샷을 했다. 샷이 감기면서 왼쪽 러프에 떨어졌다. 안병훈은 페어웨이로 잘 보냈다. 세컨드 샷을 그린에 올렸지만 노승열의 퍼트 거리가 안병훈보다 2배 멀었다. 안병훈은 첫 번째 터치를 잘해서 탭인 파를 가볍게 했다. 하지만 노승열은 15m 거리에서 첫 번째 퍼트가 짧았고, 두 번째 퍼트는 홀컵을 돌고 나왔다.

 친구가 파 퍼트를 놓치는 순간 안병훈은 우승자가 됐다. 그러면서도 인상을 찌푸렸다. 안병훈은 “연장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잘 쳤던 승열이가 마지막에 실수를 해서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편 안재형(50·탁구 국가대표 코치) 씨와 함께 아들 경기를 지켜봤던 자오즈민은 “가족 모두가 우승 순간을 함께 하기는 처음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주흥철(34·볼빅)이 8언더파 3위, 강성훈(28·신한금융그룹)이 6언더파 4위에 올랐다.

 ◆우승 상금 일부 위스타트에 기부=안병훈은 우승 상금의 일부를 저소득층 아동을 돕는 ‘위스타트(회장 송필호 중앙일보 부회장)’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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