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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보약 선물보다 부모님 ‘아랫동네’ 살피는 게 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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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권성원 교수는 자칭 ‘하수도과(비뇨기과) 왕초’다. “평생 칼 잡는 일 이외에 한눈을 판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또래 노인들에게 외치고 다닌다. “저도 조만간 8학년에 들어갑니다. 전립선 질환에 겁먹지 마세요. 절대 혼자 속으로 끙끙 앓지 마세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천 상륙작전이 아니다. 우산국(于山國) 상륙작전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의 옛 이름. 권성원(75) 차의과대학 비뇨기과 석좌교수는 지난 5일 울릉도에 다녀온 일을 인천 상륙작전에 견주었다. 잇따른 태풍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현지 노인 666명을 돌보고 온 뒤의 감회였다.

[박정호의 사람 풍경] ‘전립선 전도사’ 권성원 차의과대 석좌교수
‘시원한 오줌, 늘 푸른 인생’ 20년 봉사
전국 벽지 31곳 7만여 명 노인 치료
돈으로 따지면 130억 … 보건소 순례도

 “천운이었다. 명색이 해군 소령 출신이지만 날씨는 하늘의 뜻이지 않은가. 진료 일주일 전 의약품·진단장비·구급차를 울릉도에 먼저 들여보냈다. 진료 다음 날 배가 뜰 수 없을 수 있다는 통지도 있어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권 교수는 ‘전립선 전도사’ ‘전립선 아버지’로 불린다. 의료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오지·낙도 등을 돌며 이 땅 어르신들의 ‘아랫도리’를 챙겨왔다. 올해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의료봉사법인 한국전립선관리협회가 태어난 지 20년이 되는 해. 그 스무 돌을 기념해 우산국을 찾아갔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협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권 교수는 “우리 의료진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라고 소개했다.

나이가 들면 배뇨도 골칫거리다. 시사만평가 백인수 화백이 소변으로 고통을 겪는 노인의 일상을 풍자했다. 계간 ‘전립선’에 실렸다.

- 비뇨기과에도 드림팀이 있나.

 “2001년 협회장을 맡으면서 의료 사각지대 순례에 나섰다. 1년 평균 두세 차례 봉사단을 꾸린다. 전남 고흥군을 시작으로 방방곡곡을 누볐다. 사방 100㎞ 주변에 대학병원이 없는 벽지(僻地)만 골랐다. 의료진 20여 명은 백발이 성성한 비뇨기학계의 원로다. 대부분 원장·학장 등 보직을 지낸 실력파다. 그러니 드림팀일 수밖에…. 얼마나 아름다운 할배들인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 2005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울릉도는 31번째 지역이다. 다음달 24일에는 실향민이 많은 강원도 고성으로 떠난다. 예비답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다닌 거리가 5만㎞ 가까이 된다. 그 밖에 수도권 주변 보건소도 350여 회 다녀왔다. 이래저래 7만여 명을 치료해드렸다. 돈으로 따지면 130억원에 이른다. 제 힘으로만 이룬 게 아니다. 수많은 기업인과 봉사단의 후원이 컸다. ‘전사모’(전립선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40여 명이 늘 함께한다. 그들이 진짜 주인공이다.”

울릉도는 사정이 어땠나.
“총인구가 1만300명이다. 60세 이상 남성 노인이 2400명이다. 여성까지 합하면 둘 중 한 명이 나이 드신 분이다. 고령화 사회의 단면이다. 당초 300~400명을 예상했는데 꼭두새벽부터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인구 대비로 볼 때 지금까지 진료 가운데 최고의 기록이었다. 매서운 바다, 척박한 땅과 싸워온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실감했다.”
주로 어떤 진료를 해왔나.
“한 번 움직이는 데 5000만원 정도 든다. 의료 수준은 대학병원급이다. 의학강의, 신체검사, 요속(尿速)검사, 초음파검사, 전문의 상담, 약품 지급 등이 원스톱으로 진행된다. 5분의 오차도 없다. 그래야 짧은 시간 안에 수백 명을 살필 수 있다. 의료진 평균 나이가 60대 중반이다. 시골 노인들과 거리감이 없어 그들의 속사정을 들을 수 있다.”
 - 전립선이 왜 그리 중요할까.
“전립선 질환은 대개 노인이 걸린다. 60대는 60%, 70대는 70%가 오줌을 누는 데 불편을 느낀다. 전립선비대증은 이제 병도 아니다. 수술할 필요가 없다. ‘기똥찬’ 약이 많다. 전립선암도 죽을 병이 아니다. 다른 항암치료보다 부작용이 없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쉬쉬하며 지낸다. 아내·자녀·손자들에게 창피해해서다. 무지와 체념의 뿌리가 깊다. 협회의 구호가 ‘시원한 오줌, 늘 푸른 인생’이다. 고령화 사회는 거스를 수 없다. 그들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난 5일 울릉도에서 열린 한국전립선관리협회의 의료봉사 현장. 현지 노인 666명이 진료를 받았다.

 권 교수는 자칭 ‘칼잡이’다. 대화에 꾸밈이 없다. 비뇨기과를 ‘하수도과’로, 스스로를 ‘하수도과 청소부’로 부른다. 연세대·이화여대 등 대학병원에서 40년 넘게 근무했다. 2005년 정년 퇴임 후 차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역마살 때문에 ‘꼰대’ ‘노털’이 되도록 오지를 다니고 있다. 의사의 기본은 베풂이다. 일선 보건소에서 저를 모르면 간첩이다. 봉사를 하고 나면 몸은 파김치인데 마음은 깃털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전날 모교인 부산대 의대 개교 60주년 행사에서 ‘의사의 길’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 후학들에게 무슨 말을 건넸나.

 “조금은 별난 길을 걸어온 나의 삶을 돌아봤다. 고교 시절 영화에 흠뻑 빠졌다. 의사가 돼서도 의학과 영화의 만남을 시도했다. 국내 처음으로 시술 과정을 내시경 카메라로 보여주었다. 수술 관련 비디오 영화도 30여 편 제작했다. 별명이 ‘동대문(옛 이화여대 병원 자리)의 스필버그’였다. 의사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 로빈 쿡도 의사 출신이다. 의사가 될 정도 머리면 사회에 기여할 게 많다. 돈 버는 데 집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 여유가 없으면 남을 돕기도 힘들다.

 “지난 순간순간이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직후 협회를 맡았는데 사무실도 없어 제 교수 연구실을 임시변통으로 쓰기도 했다. ‘인생은 예스(YES)’라고 믿어왔다. 고비고비 어려운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2005년 정년퇴임 당시 눈앞이 캄캄했는데 요도암으로 숨진 고교 동창이 ‘노인들을 위해 사용하라’며 현재의 사무실을 내놓았다. 죽은 친구가 산 친구를 살린 셈이다. 이후 남은 생애를 오줌 못 누는 노인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 21세기형 효도를 말해 왔는데.

 “곧 추석 명절이다. 옷가지나 보약 선물보다 부모님들의 아랫동네를 살펴보는 게 효의 시작이다. 고향에 가거든 이렇게 말해보라. ‘아버님, 어머님과의 잠자리는 어떠세요’ ‘어머님, 요즘 오줌을 지리시지는 않나요’ 등등. 문제가 있다면 병원에 모셔 가라. 삶의 질이 중요한 시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에 전립선 질병을 치매와 함께 21세기의 2대 중점 관리질환으로 지정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까.

 “무료 계간지 ‘전립선’도 14년째 만들어 왔다. 누적 발행부수가 35만 부를 넘어섰다. 모두 쌓아놓으면 백두산보다 높다. 4t 트럭 20대 분량이다. 1권당 발송비만 1080원, 경비가 장난 아니다. ‘거지’가 되기로 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광고를 따러 다녔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눈감는 그날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안정적인 후원 시스템이다. 그래야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 지금까지 버텨온 동력이라면.

 “평소 즐겨 쓰는 말이 ‘하쿠나 마타타’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뜻이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나오는 대사다. ‘전사모’ 모임에서 제가 ‘하쿠나’ 하고 건배하면 회원들이 ‘마타타’라고 화답한다. 우리나라는 ‘하쿠나 마타타’다. 우리 부모나 동료들은 전쟁과 가난의 20세기를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들의 땀과 눈물을 못 본 체할 수 있겠는가.”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전립선 질환 예방하려면 매일 좌욕하고 걸어라

‘구두 위에 떨어지는 것이 오줌인가, 눈물인가’. 한국전립선관리협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시사만평가 박인수(1932~2011) 화백의 작품에 붙은 설명이다. 노년의 상실과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권성원 교수에게 전립선 질환을 피해 갈 수 있는 핵심 팁(tip) 세 가지를 들었다.

 ① 걸어라, 또 걸어라=장수의 비결은 걷는 것이다. 배뇨 장애 또한 체중 조절 실패로 올 수 있다. 살이 찌면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전립선이 비대해질 수 있다. 나 역시 지난 20년간 매일 저녁 양재천변 7㎞를 뛰고, 걸었다. 술자리가 있으면 일단 걷고 난 뒤에 참석한다.

 ② 1500원을 투자하라=아침·저녁 하루 두 번 좌욕을 하라. 반신욕은 번거롭다. 1500원짜리 플라스틱 대야를 사서 양변기에 올려놓고 섭씨 42~43도 온수에 3~4분 앉아 있으면 된다.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서 방광도 편안해진다. 장시간 버스를 탈 때도 미리 시도해보라.

 ③ 콩 발효 식품을 먹어라=신토불이다. 콩 발효 식품을 권한다. 된장·고추장에는 이소플라본 같은 항암물질이 풍부하다. 토마토에 있는 리코펜 성분은 전립선암 예방 효과가 좋다. 스파게티를 시킬 때 나는 늘 토마토를 선택한다. 크랜베리는 방광염·요도염 예방에 좋은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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