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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 불량 국감] “몰라요” “네~네” 기관장 불성실 답변 … 부실 국감 또다른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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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윤화(左), 임종룡(右)

“무슨 3단 변신 로봇도 아니고….”

192억짜리 기상항공기 도입
“감사원 징계 요구 묵살” 추궁에 고윤화 청장 “제가 잘 몰라서”
“인터넷은행 수 유연하게”
임종룡 금융위장 답했다가 시장 혼란 커지자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16일 피감기관장의 답변 태도에 대해 한 말이다. 국정감사를 비생산적으로 만드는 건 의원들뿐만이 아니다. 일부 기관장은 성의 없는 답변과 거짓말 등으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방해하고 있다.

 # 지난 14일 기상청에 대한 환경노동위의 국정감사장.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192억원이 투입된 기상항공기 도입 과정을 문제 삼았다. 감사원이 ‘20인승 이상 항공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기상청은 13인승을 구입했다.

 ▶김 의원=“감사원이 책임자 정직을 요구했는데 묵살하고 (가장 가벼운) 견책을 한 이유가 뭔가.”

 ▶고윤화 기상청장=“제가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지 못해서….”

 ▶김 의원=“이게 하찮은 문제인가. 192억원짜리다!”

 피감기관장의 ‘모르쇠’ 답변은 기상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정진엽 장관은 “정확한 것은 모른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여권 내 실세’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까지 나서 “도대체 내용을 알고 답변을 하는 거요, 뭐요”라고 호통쳤다. 참다 못한 새정치연합 소속 김춘진 위원장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국회법을 설명하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 10일 미래창조방송통신위 국정감사. 방송사 징계를 담당하는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의원들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라는 말을 연발했다. 그러다 이런 장면까지 연출했다.

 ▶송호창 새정치연합 의원=“메르스 때 ‘낙타를 조심하라’는 ‘무한도전’의 풍자 방송을 징계했는데….”

 ▶박 위원장=“네, 행정지도….”

 ▶송 의원=“질문을 다 한 뒤 답해 달라. 방심위가 징계를 했는데….”

 ▶박 위원장=“그렇습니다. 네….”

 ▶송 의원=“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최민희 의원은 “박 위원장은 정치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국회를 무시하고 어영부영 넘어가는 법을 가장 빨리 배운 사람”이라며 “피감기관장들은 ‘정해진 국감 기간만 적당히 넘기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매년 성과 없는 국감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환노위의 15일 국감. 노사정 대타협을 주도한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에게 야당 의원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반민주적 폭거를 주도한 사람으로 기록될 거다.”

 ▶김 위원장=“(화난 표정으로) 평가를 제대로 하시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의원에게 “저보다 세상을 덜 살아 재벌과 세상을 잘 모른다”고 혼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 초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마음이 모두 ‘콩밭’에 가 있는데 제대로 국감이 되겠느냐”고 했다. 의원들 스스로 국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국회 안에선 “이번 국감은 깡통”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 바람에 피감기관장들은 더 뻣뻣해졌다. 지난 11일 한국자유총연맹에 대한 국감에선 “종북세력을 두더지 잡듯 분쇄하겠다”는 허준영 중앙회장의 취임사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이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허 회장은 “어디다 대고 고함을 치시고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반박했다.

 피감기관장들이 임시방편식으로 답변해 시장에 혼란을 준 일도 있다.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대한 국감 뒤 금융 당국은 기관장의 말을 뒤집는 해명자료를 냈다. 14일 금융위 국감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을 3~4개 인가하라”(새정치연합 이상직 의원), “1~2개로 국한할 필요가 있느냐”(새누리당 이운룡 의원)는 지적에 “기존 방침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최대 2개까지”라는 정부 방침을 번복한 폭탄선언이었다.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금융위는 뒤늦게 “기존 발표대로 1~2개만 시범 인가한다”고 해명했다.

이태경·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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