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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른들 놀이판 속 네 가지, 생략·비약·즉흥·의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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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손자뻘 후배들과 나란히 ‘팸스 초이스’ 공연에 서게 된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씨는 “답답한 일이 더 많아지는 우리 현실에서 허구의 무대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빡빡 깎은 머리를 자꾸 쓰다듬어 올리는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75)씨는 몇십 년 연하 후배들 틈에서도 초년병처럼 싱싱했다. 20대 초반 광대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에너지가 쨍쨍한 목소리에서 피어올랐다. 14일 오전 서울 원서동 공간소극장에서 열린 2015 서울아트마켓(이하 팸스·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 설명회에 참석한 그는 연극 활동 50년을 바라보며 더 젊어지는 비상한 기운을 발산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답답한 일이 많았어요. 그걸 어떻게 풀어주느냐가 광대들 몫이죠. 옛 어른들이 만든 전통 연희를 보면 깊은 지혜가 느껴져요. 그 뼈대를 네 가지로 정리하면 생략·비약·즉흥성·의외성입니다. 이 네 길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하는 판을 벌였던 선조의 유희 정신을 되살리고 싶어요.”

 극단 목화를 이끌며 토속적 연희 정신을 되살려온 그는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선영)가 주관하는 ‘팸스 초이스’에 처음 선정된 기쁨을 “나는 아직 아마추어”라는 역설로 표현했다. 국내 예술단체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외국 주요 공연물의 흐름을 소개하는 팸스는 올해 11주년을 맞아 다음달 5일부터 9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와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을 무대로 펼쳐진다. ‘확장과 연결’을 주제로 아시아 공연예술 교류의 중심이 되겠다는 사명감을 드러낸 팸스에 오태석의 존재는 중심을 잡아주는 저울추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나’ 아닌 다른 이의 개안(開眼)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얘기죠.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화두라고 보지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그는 연극의 완성이라는 것은 무대에서 제공하는 단초가 4할, 나머지 6할은 객석의 관객 역할이라고 했다. 우리 고유의 연극문법을 찾아 평생 연극을 만들며 살아왔지만 우리 삶이 잘 담겨져 있는 무르익은 작품을 만드는 문법이 뭔지 잘 몰라 늘 쩔쩔매고 있다고 그는 머리를 문지르며 수줍어했다.

 이날 대선배인 오태석씨와 자리를 나란히 한 ‘창작그룹 노니’의 김경희씨는 “외국으로 진출보다는 축제의 마당에서 만나는 오늘 여기에 사는 이들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동네 안에서도 변방에서 우짖는 신세였던 무대예술의 의연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0년 동안 해외로 뻗어나가려는 갈망에 목말라하던 단체들이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인 건 팸스 연륜의 결실이다.

 “우리 얘기를 해야죠. 그동안 외국에 진출하려 셰익스피어 같은 서구 거장의 틀을 빌렸지만 이제는 우리 것을 펴놓고 의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단의 이름 ‘목화’, 껍데기는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그 겉과 속의 유연한 부대낌에 한국 공연예술의 미래가 있다”고 오태석씨는 말했다.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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