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傳(2)] 권력에 도취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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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특사로 2012년 8월 중국을 방문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왼쪽)이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과 만났다. [중앙포토]

장성택은 권력에 도취됐다. 본인도 그렇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만들었다. 특히 2012년 8월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 홍콩의 명보(明報)는 ‘북한의 섭정왕 장성택이 방중했다’고 보도했다. 대표단은 모두 30명이 됐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이는 장성택이 북한의 2인자임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비쳐졌다. 중국도 국빈급이 묵는 댜오위타이에 장성택의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의 이런 배려가 장성택의 운명을 재촉했다. 특히 ‘섭정왕’이란 표현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비수로 꽂혔다. 섭정왕은 청나라의 도르곤을 연상하게 만든다. 도르곤은 청 태조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로 2대 황제 홍타이지가 사망한 뒤 어린 조카를 황제에 앉히고 섭정왕이 됐다. 도르곤은 청나라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어린 황제에게는 버거운 존재였다. 명보가 장성택을 이 도르곤에 비유한 것이다.

장성택은 방중 기간에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김정은의 방중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후진타오는 그 해 가을에 있을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의 인선을 놓고 장쩌민 전임 주석과 전면전을 벌이던 중이라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방중을 확정하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김정은에게 마치 큰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큰 소리를 쳤고 김정은도 일단 방중단을 치하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장성택은 중국 방문 이후 기세가 오를 대로 올랐다. 조선시대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임금처럼 행세를 했다. 자연스럽게 김정은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성택의 득세를 오래전부터 고깝게 지켜보던 빨치산 혁명 2,3세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장성택의 사형 판결문에 ‘수도 및 중앙기관에 손을 깊숙이 뻗쳐 자신의 부서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소왕국‘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장성택은 억울할지 몰라도 경쟁자들이 보면 그의 행동은 오해를 사기에 딱 좋았다.

권력에 도취되면 상대방이 얕잡아 보인다. 권력의 속상이 그렇다. 장성택의 눈에는 자신의 경쟁자들이 우습게 보였다. 빨치산 혁명 2,3세들은 2013년 1월부터 장성택의 오른팔과 왼팔인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최용해 노동당 비서를 그들의 맏형으로 내세웠다. 그 때부터 조직적으로 ‘장성택 사냥’에 들어갔다. (계속)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ssk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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