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코빈(66) 등장 이후 영국 노동당이 기존 노선인 '제3의 길'을 수정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빈에게 ‘제3의 길’은 '바지 입은 대처의 논리’와 다름없다. 그는 "서구식 좌파 논리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재임 1979~90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뒤섞어 놓은 게 ‘제3의 길’"이라고 비판해 왔다.
BBC 방송은 13일 정치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노동당 전체가 역사적인 노선 투쟁에 휘말려들 운명”이라고 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내세운 ‘제3의 길’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당내에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선 투쟁은 블레어가‘신노동당’을 주창하며 ‘제3의 길’을 내세운 98년 이후 17년만이다. 다만 코빈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반(反) 긴축(일부 에너지 기업 등 국유화)을 주장했다.
가디언은 “대중적인 그의 말속에 들어 있는 싹이 바로 ‘제3의 길’ 폐기”라고 분석했다. 반 긴축 자체가 ‘제3의 길’ 핵심을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신자유주의 논리 가운데 ‘활력 넘치는 경제(작은 정부)’를 받아들였다. 구체적으로 민영화와 복지 축소 등으로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면서 민간 부분의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블레어의‘제3의 길’ 공약은 처음엔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하나 둘씩 약속이 깨졌다. 빈부 격차만 더 벌어졌다. 코빈뿐 아니라 유럽 좌파 진영의 대중이 당내 주류 논리에 반발하고 있다.
코빈의 노선 투쟁은 녹록하지 않다. 블레어가 98년 “나라를 바꾸는 일보다 당을 바꾸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말이 코빈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코빈이 ‘제3의 길’ 지지자들을 설득?압박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블레어 흔적 때문이다. 그는 17년 전 당내 물갈이를 위해 노동조합 영향력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선거 제도를 바꿨다.
코빈이 블레어 흔적을 성공적으로 지우고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서방 좌파 지형도 바뀔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 노동당은 '서방 좌파의 카나리아'여서다. 먼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해 받아들였다. ‘제3의 길’의 경우 영국에서 시작돼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