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 임기, 의원 임기와 일치하게 제도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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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6 면

의회는 국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대표성’과 선거를 통해 교체되는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확보하고 축적하는 데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가 상임위원회다.


상임위는 분업을 통한 운영의 효율성과 함께 정책 전문성의 확보를 가능케 하는 장치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는 의원 개인의 전문성을 활용하거나 위원회를 통해 업무 전문성을 쌓는 두 가지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전자를 위해서는 의원의 전공과 경력에 맞는 상임위를 선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출신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유착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의원이 한 정책 분야를 오랫동안 관장함으로써 전문성을 축적해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 이는 의원이 임기 중은 물론이고 재선되더라도 같은 상임위를 계속 유지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결국 상임위를 통한 전문성 확보는 ‘동일 상임위 유지’라는 의원들의 특정한 경력관리 패턴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의원들로 하여금 그러한 경력관리 패턴을 추구하도록 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제도가 위원회 내의 선임 순위에 따라 위원장직을 결정하는 미국 의회의 ‘선임우선 원칙(Seniority)’이다. 주목할 것은 이 원칙이 상임위원과 위원장 선임을 둘러싼 평의원과 정당 지도부 간의 대립을 통해 확립됐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선 상임위 배정권과 위원장 선임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정당 지도부에 대한 평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그러자 당의 화합과 자발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선임우선 원칙이었다. 20세기 초에는 공화당 내에 진보 분파가 형성됐는데 공화당 출신 의장 캐넌은 이들의 입법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위원장을 대폭 교체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공화당 반란파는 이에 맞서 민주당과 함께 반(反)캐넌 연합을 형성한 뒤 하원 규칙을 개정해 의장의 위원장 지명권을 박탈했다. 그러고는 이 권한을 정당의 ‘상임위원 선임위원회’로 넘겼다. 결국 원내 지도부의 전횡에 맞서는 초당적 연합의 형성이 선임우선 원칙의 제도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선임우선주의는 전문성 축적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부작용도 못지않았다. 다선 의원 중심의 의회 운영으로 인한 의회의 보수화, 상임위원 고착화로 인한 의회-행정부-기업 간 이익유착구조(iron triangle)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에 선임우선 원칙을 약화하는 제도 개혁이 이뤄졌고, 그 결과 의회의 지나친 분권화가 사라지면서 정당 응집력이 강해졌다. 이러한 미 의회의 사례는 상임위의 자율성과 원내정당의 통제력 간에 균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미 의회는 원내정당의 응집력이 약한 사례에 속하는데, 선임우선 원칙은 이러한 원내 구조의 반영이었다.


그렇다면 원내정당의 질서가 강한 유럽 각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 대부분의 국가에선 의회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내정당을 전문성 축적에 적합하도록 조직화해 왔다. 독일의 경우 의회 상임위 체제에 상응하는 ‘작업그룹’(Arbeitsgruppe)이라 불리는 정당 내 분과위원회가 활성화돼 있다. 의원들은 이를 중심으로 특정 분야에 집중해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 의회가 전문화된 ‘일하는 국회’(Arbeitsparlament)로 불리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네덜란드·스웨덴 등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발견된다.


하지만 한국은 국회 제도나 정당 조직 그 어디에도 전문성 축적을 위한 구조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법은 2년마다 의장단을 비롯해 상임위 위원과 위원장을 변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기 상임위를 나눠 갖는다는 편의주의적인 절충의 결과로서 상임위 제도의 본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국회의 전문성 축적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의원의 임기와 상임위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일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유인하는 장치인 선임우선 규범의 원칙적 도입, 상임위 배정을 담당하는 당 공식 기구의 제도화 역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원내정당 차원에서는 정책위 산하에 분과위원회를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찬표 목포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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