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외국 도움 받던 때 생각해 난민에 문 열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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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10면

욤비 토나 1967년생. 정치적 박해로 2002년 콩고민주공화국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아 2013년부터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1호 난민 욤비 토나 광주대 교수는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신청 6년여 만인 2008년에야 비로소 난민으로 인정된 그는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도 어려운 시절 외국에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난민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1778명이 우리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고 이 가운데 94명은 난민이 됐다. 내전 중인 시리아 출신 3명이 난민으로 인정됐으며, 621명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다음은 욤비 토나 교수와의 일문일답.


 -아일란 쿠르디 사진으로 전 세계가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사진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사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다. 아프가니스탄·나이지리아 등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다.”


 -유럽과 상황은 다르지만, 한국에도 난민 신청자가 계속 늘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 이 문제를 보도하며 가슴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도 (난민에 대한) 문제가 많다. (난민 신청은 증가하는데) 한국은 여러 여건을 들며 힘들다고 한다. 역사를 잊은 말이다.”


 -어떤 의미의 역사인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른 나라로 떠난 사람이 많았다. (망명자 등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문을 열어 받아줬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경제 규모로 볼 때 잘사는 나라지만 난민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95%가 가난한 콩고민주공화국조차 시리아 난민 1만 명을 받겠다고 했다. 세계를 구성하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문제다.”


 -소송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는데. “한국에 왔을 때 바로 망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6년이나 걸렸다. 콩고에 있을 때 함께했던 동료 5명도 유럽으로 망명했는데, 그들은 5개월 내에 모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난민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2013년 난민법을 만들었지만 법무부 담당자만 알고 한국 사람들은 난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한국 사회는) 난민도 많아졌고, 다문화가정도 늘고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정보를 (법무부가) 제대로 알려야 한다.”


 -난민 인정 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처음에 와서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병원도 가지 못했다. 외국은 난민들의 밥·옷·집을 해결해주고 병원도 보내주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나는) PC방에서 살았다. 밤에는 공장에 가서 일하고 실수하면 쫓겨났다. (난민 인정 전까지) 6년 동안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때 난민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오히려 구치소에 잡혀가는 사람들은 밥도 잘 먹고 병원까지 보내주고 더 나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 나는 운이 좋아 교수로 일하고 있지만 (한국은) 난민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


 -한국 난민 정책의 가장 큰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난민은 가난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고 자기(난민의) 나라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이승만 대통령도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것처럼 생각해주면 된다. 세계 (공동체) 사회 문제로 생각해 교육하고 (난민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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