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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이슈] DIASPORA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AP=뉴시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뜻입니다.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키던 말이지만 지금은 ‘자의든 타의든,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연일 뉴스에 소개되는 유럽 난민 사태가 있죠. 2011년 이후 4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를 포함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터키·예맨·리비아 등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디아스포라’는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중동과 아프리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디아스포라’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온, 강제노역으로 일본 우토로에 자리 잡게 된 한국인과 인력수출 붐이 불었던 1960~70년대에 타국에 정착해 일하게 된 한국인 역시 ‘디아스포라’의 산 증인들입니다.

살려고 들어간 난민촌은 생지옥 … ‘아일란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일 그리스로 가려던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가 터키 남서부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P=뉴시스]

9월 5일 요르단의 자으타리 시리아 난민 캠프. 요르단 북부 시리아 국경에서 15㎞ 떨어진 곳입니다. 시리아 난민들은 2012년부터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 8만30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죠. 그중 절반 정도가 아이들입니다. 중동 최대 난민촌인 이 캠프는 사막 위의 거대한 수용소와 같습니다. 캠프 외곽은 장갑차와 군인들로 둘러싸였죠. 물과 전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식량은 일인당 월 20디나르(약 3만3500원)를 바우처(비자카드) 형태로 받습니다. 국제원조 규모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데, 이 카드로 캠프 안의 상점에서 음식을 사 먹습니다. 요르단 민간소유인 상점은 캠프 내 판매 독점권을 갖고 있어 외부보다 가격이 3~4배 높습니다. 학교 역시 열악합니다. 요르단 정부가 배치한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습니다. 요르단 당국이 만든 ‘모든 교사는 요르단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법 때문에 박사학위를 가진 시리아 난민이 있어도 교편을 잡을 수 없습니다.

리비아 해안에서 표류 중이던 난민들이 스웨덴 구조선 포세이돈에 탑승하고 있다. [AP=뉴시스]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도 받기 힘듭니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시리아에 남아 정부군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기 역부족인 엄마들은 아이를 캠프 밖 사업장에서 몰래 일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합니다. 캠프 밖 출입은 금지돼 있지만 경비원들도 사정을 감안해 눈감아 줍니다. 요르단 정부는 캠프 안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난민들을 시리아로 쫓아냅니다. 불법 노동으로 인한 구금과 본국 송환의 위험이 있는 성인 대신 저임금에 해고하기도 쉬운 아이들이 생계벌이의 최전선으로 내몰리는 이유입니다. 캠프 근처 농장에서 7시간 가까운 중노동으로 손에 쥐는 돈은 겨우 6~9 디나르(1만~1만5000원). 사업주들은 푼돈으로 아이들을 착취합니다.

구호단체와 캠프 관리소는 선의로 난민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지만 캠프 관리소나 국제단체 안에서도 부정부패가 벌어진다는 말이 난민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도움조차 끊어지거나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도움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난민 사이에서 커져 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올해만 35만 명을 넘었습니다. 3000명이 익사했고, 이동 과정에서 숨진 사람을 합치면 1만5000명이 희생됐습니다.

중앙선데이 2015년 9월 5일자

'난민 해결사' 메르켈 총리에 유럽 일부 불만 터뜨려

지난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역 앞에서 아이를 무등 태운 한 시리아 난민을 헝가리 민족주의자가 막아서고 있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8일(현지시간) 스테판 뢰프벤 스웨덴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EU 회원국별 난민 쿼터제를 빨리 정착시키고 EU 공동 망명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일의 행보에 난민들은 환호하고 있지만 유럽 내부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일·스웨덴의 지원 약속만 믿고 난민들이 목숨을 건 유럽행을 택한다”고 전했습니다. 인디펜던트는 “난민 쿼터제야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겠지만, 동서 유럽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 2015년 9월 9일자

먹고살려 뿔뿔이 보따리 … 조선족 없는 조선족마을

중국 동북 3성(길림성·요령성·흑룡강성)의 조선족은 190만 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길림성 영풍촌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이 숫자에 ‘현실감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마을 조선족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공장·식당·건설 현장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용’으로 성장한 1990년대부터 그 수는 급격히 늘었죠. 실제로 마을 조선족 20가구 중 남아 있는 곳은 1가구뿐입니다. 하지만 악착 같이 일해도 여전히 가난합니다. “이 마을에서 한국 간 사람 10명 중 6명이 망했어. 집도 없이 떠돌이 신세야. 가족들은 사방천지에 산산이 헤어졌고.” 영풍촌 조선족의 말입니다.

한겨레 2011년 11월 5일자

'재일 바퀴벌레 조선인을 내쫓아라' … 일본 4년간 혐한시위 349건

‘재일 바퀴벌레 조선인을 내쫓아라’, ‘재일한국인·조선인을 대포동미사일에 실어 한국으로 보내버리자’ 재일 코리안을 증오하며 이들에 대한 과격한 표현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헤이트 스피치·혐한 시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작년 7월까지 일본 도쿄지역과 주일대사관 주변에서 일어난 혐한 시위건수는 총 349건입니다. 일본 주요언론이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다룬 보도현황도 48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헤이트 스피치를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다며 두둔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당국도 혐한 시위를 ‘문제가 없다’며 허가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2014년 8월 13일자

강제징용 새신랑이 보낸 편지 한 장 … 70여 년의 기다림

백봉례 할머니가 70년 전 사할린에서 온 남편의 편지를 바라보고 있다. [JTBC]

1930년대 말 15만 명의 조선인들이 차디찬 러시아 사할린 땅을 밟았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하겠다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합니다. 사할린의 조선인들도 이때 일제에 의해 끌려가 가혹한 노역을 견뎌야 했습니다. “3년 갔다 온다고 해서 3년이 금방 갈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어….” 아흔이 다 되도록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온 백봉례 할머니의 남편도 1943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습니다. 결혼 10달 만에 맞은 생이별. 당시 할머니는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이후 남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백 할머니는 이 편지 한 통을 희망으로 70여 년간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지난해 백 할머니는 직접 사할린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남편의 근로명세서는 꺼져가던 희망에 불을 지폈지만 그의 생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남편이 떠날 때 뱃속에 있던 딸 윤순씨는 올해 71세입니다. 딸조차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됐습니다.

JTBC 2015년 8월 15일자

정리=이세라 기자, 이연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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