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7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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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무대가 약을 들이켜다 말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약사발을 손으로 밀었다.

"왜 이렇게 약이 쓴 거요? 너무 쓰고 독해서 목으로 삼키기가 힘드오."

'독해서'라는 말에 금련은 속으로 뜨끔하였으나 시치미를 떼고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약일수록 쓰다는 말 못 들었어요? 잠시 쓰고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게 좋아요. 쓰다고 먹지 않고 오래 병들어 누워 있는 게 좋아요?"

"그야 두말 할 필요가 없지만 이건 너무 독해서 혀가 타들어갈 것 같아."

"그러니까 조금씩 마시지 말고 눈 딱 감고 한꺼번에 확 들이켜는 게 좋아요."

"그, 그래, 그래."

할 수 없이 무대가 손을 내려놓으며 다시 입을 벌렸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금련이 약사발을 잔뜩 기울여 무대의 입 안에 약을 쏟아붓다시피 하였다.

"억, 크윽, 크윽."

금방이라도 토할 듯이 하면서도 무대는 입 안에 들어온 약을 억지로 삼키려고 애를 썼다. 그 바람에 사발에서 흘러내린 약이 금련의 손등에 묻었다. 금련은 약 속에 든 비상으로 인하여 손이 타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되어 무대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일단 중지하였다. 아니, 이미 무대의 창자를 새까맣게 태워 녹일 만큼 충분히 약을 먹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그만 먹어도 되는 거야?"

무대가 금련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요. 당신이 너무 힘들어 하니 오늘은 이만큼만 먹도록 하죠."

무대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을 침상에 뉘었다.

"의원이 그러는데 약을 먹고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땀을 많이 내야 한대요."

금련이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무대를 덮어주고는 약사발을 들고 아래층으로 쏜살같이 뛰어내려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금련은 부리나케 대야에 물을 받아 손을 씻어댔다. 그리고 솥물에 끓여둔 수건을 챙겨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가 침상에서 이불을 걷어차며 배를 끌어안고 뒹굴고 있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창자가 뒤틀리네! 아이구."

금련이 다가가자 무대가 두 팔을 내밀며 애원하였다.

"여보, 날 살려줘! 이러다가 죽겠어. 의원을 빨리 불러줘!"

"엄살도 심하시네. 이불 푹 뒤집어쓰고 땀을 내라고 했는데 이렇게 이불을 다 걷어차면 어떡해요?"

금련이 매몰차게 이불을 다시 끌어당겨 무대를 덮어주었다. 이번에는 무대의 얼굴까지 이불로 덮어 눌렀다. 무대는 이불 밑에서 신음을 토하며 요동을 치고, 무대가 그럴수록 금련은 있는 힘을 다하여 이불이 젖혀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무대를 타고 눌렀다.

"아이구, 숨, 숨이 막혀. "

"이불을 꼭 덮어쓰고 있으란 말이에요. 땀을 내어야 몸이 빨리 낫죠!"

금련은 일부러 소리를 크게 질러 아래층에 있는 영아의 귀에까지 들리게 하였다.

차츰 무대의 신음이 약해지더니 요동치듯 하던 몸부림도 잦아들었다. 마침내 무대의 몸이 죽 뻗어버리는 느낌이 이불 너머로 전해져 왔다.

'죽었구나!'

금련은 자기가 지금 시체를 타고 있다는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떨며 침상에서 굴러떨어지듯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금련은 왕노파에게서 지시를 받았으면서도 막상 일이 벌어지자 당황스럽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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