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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우울한 초상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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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린(25)은 얼마 전 아마존의 미국 시애틀 본사 소매팀에서 일할 때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같은 대목엔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고 돌이켰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료들은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한 동료는 그녀의 실적을 가로채기도 했다. 링린은 “서로 감싸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6일 뉴욕타임스 신문은 아마존의 그런 치열한 기업문화를 폭로했다. 승자 독식의 보상체계로 직원을 무자비하게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파장을 일으키자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만약 아마존이 기사에 묘사된 그런 회사라면 나라도 떠나겠다”며 “요즘처럼 IT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기업은 번창은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무튼 이 공방전은 실리콘밸리의 근로자들이 높은 임금과 수익성 좋은 스톡옵션, 다양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치르는 대가에 관한 오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직원을 극단적인 기대에 부응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과연 좋은지에 관한 의문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직원을 로봇처럼 대하는 회사는 높은 이직률과 사기 저하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젊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력을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무리한 요구로 직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회사가 아마존만이 아니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였던 고 스티브 잡스는 회의 준비가 부족한 동료에게 현장에서 면박을 주기로 악명 높았다.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지낸 스티브 발머는 구글로 자리를 옮기는 직원 앞에서 의자를 집어던졌다.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는 급작스럽게 재택근무를 금지해 직원 수천 명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취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에는 휴랫패커드의 전 CEO 칼리 피오리나(얼마 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직원을 ‘필요악’으로 간주했다는 글이 올랐다.

대기업만 직원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도 아니다. 기술업계에서 오래 일한 매트 톰슨(현재 비틀리의 최고제품책임자다)은 SNS에서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사이트 클라우트의 창업에 참여했을 때 투자유치 마감일 전후 두 차례나 주 80시간씩 일했다고 돌이켰다. 톰슨은 의욕적으로 일하는만큼 거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실리콘밸리에 유혹된 다른 젊은이처럼 그런 도전을 즐겼다. 그는 “일이 끝도 없었지만 매 순간 신나게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무리 투지 넘치는 직원이라도 궁극적으로는 한계점에 이르러 실적이 떨어지고 회사가 피해를 입는다고 경고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육대학원의 알렉산드라 미셸 교수는 과로가 계속되면 약 4년 뒤엔 몸과 마음을 망치는 동시에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로 금융업계의 강도 높은 근무 조건이 회사와 직원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지만 여러 기술업체의 자문역으로 일하며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확인했다. “4년 동안은 실적이 아주 우수하다. 그러나 그 후론 달라진다. 몸이 견디지 못한다.” 미셸 교수는 금융계 종사자 사이엔 치열한 근무 환경과 생활방식의 결과로 불면증·불안증·우울증·심장질환, 특히 여성의 경우 내분비장애가 흔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조사에 따르면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기업문화는 특히 여성에게 큰 타격을 준다. 가사와 육아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포용컨퍼런스’의 공동설립자 멜린다 브리애너 에플러는 “기술 업계에선 극단적인 실적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여성은 자녀 갖기를 포기하거나 업종을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아마존 근무환경에 관한 기사는 갑상선암을 앓은 여직원이 투병 후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녀가 없을 때 동료들이 큰 성과를 냈다는 이유였다. 유방암에 걸린 다른 여직원은 성과 부진으로 해고 위기에 내몰렸다. 또 다른 여직원은 쌍둥이를 유산한 다음날 출장 길에 올라야 했다. 상사는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이 당신에게 맞는 직장인지 모르겠다”고 모질게 말했다.

그처럼 여성이 도태되면서 생기는 직원의 성비 불균형 같은 다양성 결여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기업체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다양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경우 전체 직원 중 여성이 37%이며 여성 임원은 아예 없다. 직원교육 전문 사이트 마인드플래시의 CEO 도나 웰스는 “아마존의 주요 고객층이 부모와 여성”이라며 “자녀가 있는 여성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승진시키지 않는다면 그런 고객에게 맞는 제품을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기술업체는 직원이 최대 자산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직원 채용과 훈련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다. 직원이 과로로 탈진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낭비되는 돈이다.

현재 구글에서 일하는 링린은 아마존에서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 약 45시간 일하지만 구글 캠퍼스가 제공하는 다양한 편의시설을 즐기려고 더 오래 회사에 머문다. “늘 사무실에 앉아 일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출근하는 날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회사 캠퍼스에서 지낸다. 내가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도 그 뒤를 따른다. 애니타보그 여성·기술연구소에서 일하는 클로디아 갤번은 회사가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춰 탄력근무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딸아이에게도 신경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기를 기대하지만 융통성이 있다.” 기술업계가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그런 기업문화가 서서히 확산된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신생업체 트리하우스는 주 4일 근무로 잘 알려졌다. 개인적 삶을 가질 수 있는 시간 때문에 인재들이 모인다. 특히 지금 직업세계에 진출하는 밀레니엄 세대에게 인기 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업체 npm은 오후 5시가 되면 퇴근을 권장한다. 충분히 쉬고 다음 날 다시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다. 캘리포니아주 샌마테오 소재 풀서클인사이트에선 보니 크레이터 CEO가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채용하지 않는다. “개인 생활이 충분해야 회사 일도 잘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아직은 이전의 월스트리트처럼 기술업계에서도 어느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주 50∼60시간 일하고 주말에도 이메일에 신경 쓰는 것이 당연시된다. 대신 고액의 연봉을 받을 기회를 준다. 아마존의 경우 다른 기술업체와 달리 무료 급식 같은 혜택이 없지만 실적이 좋으면 보너스로 충분히 보상해준다.

창업투자사 아티스벤처스의 임원인 마이크 하든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면 과거 점잖고 안정된 직장에 다녔던 부모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역사상 이런 시절은 찾을 수 없다.”

글=살바도르 로드리게스 아이비타임즈 기자 / 번역=이원기

[박스기사] 무례함도 감기처럼 전염된다

직장 내에서 불순한 일 겪으면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식으로 확산시킨다는 연구 결과 나와

캐나다 밴쿠버의 직장심리학자 제니퍼 뉴먼 박사는 최근 연구에서 직장 내의 무례한 행동이 감기나 독감처럼 전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직장에서 무례한 일을 당할 경우 또 다른 사람과 교류하기 전에 잠깐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그 영향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용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는 무례함을 ‘부정적 행동 전염’으로 정의하며 많은 직장인이 스스로를 그 피해자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뉴먼 박사는 감기가 직장인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전염병은 아니라고 믿는다. 직장 내에서 기분 나쁜 행동을 접한 근로자는 무례함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무례한 상황에 처한 근로자는 무례함의 매개체가 돼 그 발단이 된 상황과 무관한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뉴먼 박사가 캐나다 C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그 사람들은 그 다음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

뉴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약 98%가 직장에서 무례함을 경험했다고 보고했으며, 50%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그런 상황을 접한다고 말했다. 대화할 때 시선 안 마주치기, 모욕적인 말, 돌출행동,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 등이 모두 무례함의 징후라고 뉴먼 박사는 말했다. 그녀는 또 퉁명스런 대답이나 무례한 이메일도 근로자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근로자의 사기가 떨어지면 업무수행에 차질이 생겨 생산성이 낮아진다. 무례함은 또 심리적 고통과 부정적 감정, 정신적·신체적 피로를 증가시킨다.”

뉴먼 박사는 무례함의 확산을 막으려면 직장에서 무례한 일을 겪었을 때는 또 다른 사람과 교류하기 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말한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거나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든가 해서 또 다른 동료에게 무례하게 반응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거닛 바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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