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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최백호 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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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심훈(1901~36), ‘그날이 오면’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4·19가 일어났다. 내가 살던 부산 서면 길거리, 트럭 위 형·누나들이 구호를 외쳤다. 처음 보는 풍경에 놀라고, 묘한 흥분감도 느꼈다. 바로 직전 동래군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찬양 백일장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은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서 상을 받았던 나는, 이제 나도 잡혀가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하야한 다음 날 집에 배달된 신문에서 이 시를 읽었다. 원래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시를, 4·19의 해방감에 빗대 다시 실은 것이다. ‘그날이 오면~’ 첫 구절을 읽는데 피가 끓는 뜨거운 감정에 다시 사로잡혔다. 그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아직도 신문지를 펼쳐 들던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날 정도다. 그때의 정체 모를 뜨거운 격정은 이후 내 음악 곳곳에 녹아들었다.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들꽃처럼’ ‘시인과 군인’ 같은 노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우리 세대에게 4·19란, 어린아이로 살다가 처음 국가와 민족을 알게 한 사건이었다. 그 벅찬 기억은 내 맘과 몸에 깊이 새겨져 이후 내 삶과 정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최백호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