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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주차장 농민들에게 개방이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평창경찰서 앞 주차장. 바닥에 차는 한 대도 없고 붉은 고추만 보였다. 주민들은 주차 공간에 파란색 방수포를 깔고 고추를 널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주민 신무기(65)씨는 “서울에 사는 아들·딸에게 보낼 고추인데 도둑이라도 맞으면 큰 일”이라며 “바닥이 아스팔트라 고추가 잘 마르는 데다 경찰이 지켜줘 든든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날 고추 200㎏를 널고 밭으로 향했다.

평창경찰서 주차장은 수확철만 되면 농산물로 가득하다. 2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1980㎡)은 농산물 수확 시기에 맞춰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고추 수확철인 요즘은 온통 붉은 빛이다. 경찰서가 2004년부터 농민들에게 주차장을 농산물 건조 장소로 제공하면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규문 서장은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의 생활 편의를 돕는 것도 경찰의 임무라는 생각에 농민들에게 주차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읍에 사는 농민 30여 명은 해마다 10여t의 농산물을 경찰서 주차장에서 말린다. 최근 5년간 건조한 농산물은 벼 36t을 비롯해 고추 19t, 메밀 1.9t 등 모두 57t에 이른다.

경찰은 주차장의 농산물 관리도 해준다. 우선 경찰서 주차장에 있으니 도난 걱정이 없다. 또 눈비가 내리면 거둬들인 뒤 보관까지 해 피해를 막아준다. 교통사고 걱정도 덜었다. 주차장 개방 이전에는 주민들이 고추나 벼를 도로변에 널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농민 김영빈(60)씨는 “집에 고추를 널어두고 일하러 갔다가 비라도 내리면 낭패를 보기 쉬운데 경찰이 알아서 챙겨주니 걱정할 게 없다”고 말했다.
주차공간을 내놓은 평창경찰서 직원 60여 명은 수확기인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한다. 매일 왕복 4㎞를 걸어서 출퇴근하는 강기순(30) 순경은 “주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으러 가는 모습을 보면 흐믓하다”고 말했다.

평창경찰서가 시작한 주차장 개방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북 부안경찰서도 올해로 5년째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다. 개방하는 공간은 전체 주차장의 절반으로 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부안경찰서는 야간이나 휴일에 텅텅 비어 있는 넓은 주차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고민하다 수확철에 농민들이 사용하도록 했다.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사전에 신청하고 고추와 벼 등을 말릴 수 있다.

이곳에서 농산물을 말리는 농민도 점점 늘고 있다. 부안경찰서 김용현(46) 경사는 “경찰서 주자창 개방으로 주민과 경찰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며 “더 많은 주민들이 경찰서 주차장을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강원도 횡성경찰서도 지난 1일부터 주차장 495㎡를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충남 공주경찰서도 다음달 1일부터 990㎡의 주차장을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예정이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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