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가들 주권에 민감 EU 식 글로벌 거버넌스 안 맞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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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5 면

홍주희 기자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은 중국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켜 체제 안정을 도모하려는 정치용 이벤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경제성장을 통해 일당독재와 자본주의 경제가 결합한 중국식 모델을 정착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차이나 쇼크’의 여파로 경제가 떠받치던 권력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정치학 석학인 제임스 카포라소(사진)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중국의 민주화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자유를 원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25~27일 경주에서 열린 ‘2015 한국학 세계학술대회’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카포라소 교수는 “세계화는 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지만 금융 불안정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는 요지의 ‘세계화의 명암’을 발표했다.


의식주 해결되면 자유 원하는 건 당연 -세계화가 개별 국가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개방을 선언한 지 40년이 되어 가는 중국은 요지부동인데.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 정서를 억누르기 어려워질 것이다. 가장 오래 지속된 독재는 옛 소련이었다. 76년간 이어졌다.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지 올해로 66년째다. 독재의 쇠퇴에는 법칙이 있다. 국민은 초기 단계에선 성장을 끌어낼 수 있는 독재적·권위적 통치를 원한다. 한참 뒤처져 있으면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엔 성장이 어렵다. 그러면 문턱(threshold)에 이른다.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생기는 때다. 한국인들은 잘 알 것이다. 대만도 1인당 국내 총생산(GDP) 6000~9000달러 사이 그 문턱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압력이 상당히 강해진다.”


 -중국도 문턱에 이를 거란 얘긴가.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수년간 10%를 넘었다. 지금은 6~7%대다. 더구나 최근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인들도 숫자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옛 소련도 그랬다. 1960년대까지 무척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70년대 이후 성장률은 떨어졌다. 그러자 국민들은 더 이상 자신의 정부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느끼게 됐다.”


 -증시가 폭락하면서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 밖에 있는 중국인들은 6~7%라는 성장률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실제 성장률은 2~3%대에 불과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중국은 정치적 자유를 비용으로 치르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정체될 경우 국민은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의식주처럼 기본적인 것이 채워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유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어떤가. 가장 세계화됐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적이라 하기 어렵다.  “경제의 세계화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실증 연구들도 민주화가 세계화의 요건인 자본과 무역의 개방을 가져오지만 그 역은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여준다. 독재 정부는 세계화 등 다양한 외부 환경을 견뎌낼 수 있다.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강력한 공권력을 유지하겠다는 합의를 통해서다. 지금까지의 중국도 그렇다”


동아시아 경제적 통합은 이미 성공적 -세계화가 초래한 위험으로 금융의 불안정과 글로벌 경제 위기를 거론했다. 한국도 세계화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노동·복지 등 민주국가의 핵심 어젠다가 등한시됐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세계화가 민주화를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나.  “그 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다만 한국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범위를 좁혔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로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고 할 수는 있다. 선택의 문제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싶은 것, 그것 역시 개별 국가의 민주적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반드시 그걸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면 정책 선택의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식 자유(liberal) 민주주의와 유럽식 사회(social) 민주주의 중 무엇이 낫다고 보나.  “정확하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큰 틀 안에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둘이 상반되는 개념은 아니다. 경제정책에 따라 신자유주의 경제와 사회민주주의 경제의 차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이 이길 거라고 본다. 현재 미국에서도 그 방향을 향하는 역사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오바마 케어’라 불리는 의료보험 시스템을 보라. 앞으로 미국은 건강보험, 연금, 여성을 위한 휴직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더 갖추게 될 것이다. 사람은 효율성만 원하지 않는다. 안정적 보장 역시 원한다. 복지국가가 미래라고 생각한다.”


 -유럽 역시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유럽연합(EU)이라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회의가 커졌는데 유럽 통합은 지속 가능할까.  “재정 위기가 EU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U는 환경·에너지·젠더 등 경제와 무관한 수많은 정책을 다룬다. 이런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로존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 인해 각종 비관적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실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와 채권단 트로이카가 왜 그렇게 힘들게 협상을 했겠나.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게 더 이익이라는 걸 양쪽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EU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탄생한 유럽통화동맹은 경제적 관점에서 나쁜 아이디어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건 두 번째로 나쁜 아이디어다. 최악은 동맹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존재하는 이상 유지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도 EU와 같은 지역 거버넌스와 통합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무역·자본의 흐름 등을 봤을 때 경제적으로는 이미 성공적이다. 지역 공동체를 논의하면서 유럽을 비교 대상으로 둬서는 안 된다. 유럽은 아주 특별한 사례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 국가들은 주권을 글로벌 거버넌스에 일부 이양했고 그 주도권을 프랑스·독일이 갖는 데에도 합의도 했다. 하지만 역사 이슈가 있고, 주권에 관해 상당히 민감한 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중·일 어느 나라가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겠는가. 아시아는 직면한 문제들 탓에 더 나빠질 수도 있었는데 충분히 잘하고 있다.”


카포라소 교수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으로 하버드대 등을 거쳐 워싱턴대에 재직 중이다. 미국 국제정치학회 회장, 세계유럽연합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세계유럽연합학회 평생 업적상’을 수상했다.


경주=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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