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세진 유럽 극우파가 난민 막아 국력 따른 분담 수용만이 최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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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6 면

바다를 건너 유럽에 가려다 숨진 어린이의 사진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인 이 소년의 가족은 터키에서 몇 년간 난민 생활을 하다가 유럽을 통해 친척이 사는 캐나다로 가려 했다고 한다. 이들처럼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 난민이 올해만 35만 명을 넘었고, 그 과정에 익사해 숨진 사람이 이미 3000명 이상이다. 지중해까지 오거나 바다를 건넌 뒤 원하는 나라로 가는 이동 과정에서 숨진 사람을 더하면 피해자는 1만5000명이 넘는다. 철옹성 유럽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잔혹하게 목숨을 잃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올 들어 난민이 대량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동의 정치 불안이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내전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이슬람국가(IS)가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게 주민을 탄압·강간·살인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시리아에서 이미 10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고, 그 가운데 400만 명이 해외로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이웃 터키(190만)와 레바논(110만), 요르단(60만) 등에 분산돼 있다. 레바논과 같은 작은 나라는 난민의 수가 인구의 25%에 달할 정도로 수용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수용소의 생활 여건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수용소에 살고 있는 200만 명의 시리아 아동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어린이는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행렬은 안전하고 정상적인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시도다. 올해 지중해를 건넌 35만 명의 난민 중 11만이 이탈리아, 24만이 그리스에 도착했다. 이탈리아가 대개 아프리카 난민의 경로라면 그리스는 아시아인의 유럽 통로다. 난민의 불법적 월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그리스는 2012년 터키와의 육로를 막고 감시를 강화했다. 많은 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이기적 유럽’에 비난·반성의 목소리 이번 난민 사태를 계기로 이기적 유럽에 대한 국제적 비난과 내부 반성의 목소리가 부상하고 있다. 시리아 주변의 가난한 개발도상국도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여 힘겹게 상황을 꾸려나가는데, 민주주의와 인도주의를 외치는 선진 유럽은 벽을 쌓고 첨단 장비를 동원해 난민의 진입을 막는 데 열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 보호를 민주국가의 도덕적·법적 의무로 삼았다. 세계대전은 전체주의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항한 싸움이었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박해와 위협을 피해 온 난민을 보호하는 것은 전쟁의 정당성과 직결된 중대한 의무였고 전후 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둥이었다. 또한 1951년 유엔의 난민협약이나 유럽연합(EU)의 규정은 난민의 보호와 지원을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정했다. 이 같은 규범과 의무를 피해 가려 안간힘을 쓰는 최근 유럽의 모습은 모순적이고 자기부정적이다.


 유럽의 내부 사정을 살펴보면 이런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이민자 집단을 경제위기와 민족 정체성의 해체 등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자 희생양으로 삼는 극우 정치세력이 부상하면서 난민에 대한 적대적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선거에서 극우세력의 부상은 이들 정부가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이유다. 특히 프랑스의 민족전선은 반(反)이민 담론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난민과 이민을 구분 없이 비난하면서 이슬람과 테러를 교묘하게 연결시켜 외국인을 지목해 공격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반면 독일처럼 중도 세력의 입지가 확고한 나라에서는 적극적 난민 수용 정책이 가능하다. 물론 독일은 많은 난민을 초래했던 자국 과거사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난민에 대한 특별한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독일의 문제는 반이민 정당의 세력화보다는 극우 나치 집단의 폭력행위다.


메르켈 “돌려보내지 않겠다” 결단 난민 사태의 심각성은 나라마다 다르다.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의 행렬은 거의 전적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도달한다. 이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한편 난민이 가려는 유럽 국가는 경제 사정이 좋고 난민 지위를 쉽게 인정해 주는 독일·스웨덴 등이다. 노동시장 진입이나 언어 소통이 쉬운 영국도 난민이 선호하는 나라다. 난민들이 밀폐된 트럭을 타고라도 독일로 가려는 이유이고, 유로스타 기차에 매달려서라도 해저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들어가려는 동기다.


 EU 국가들은 난민이 제일 먼저 도착한 유럽 국가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하도록 2013년 더블린 협약을 통해 합의했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로 가려는 난민을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강하게 막지 않고 있다. 북유럽을 향한 난민의 행렬은 철조망과 장벽, 감시와 저지의 연속이다. 프랑스가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영국은 프랑스가 해저터널 주변 관리에 철저하지 못하다고 불만이다. 헝가리는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철조망을 치고,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의 국경 감시에 혈안이다.


 일단 독일에 들어온 난민을 다른 국가로 돌려보내지 않고 난민심사를 하겠다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발표는 용기 있는 결단이다. 기존 원칙에 연연하지 않고 위기의 상황에 유연하게 인도주의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독일이 지난해에 비해 네 배에 달하는 80만의 난민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한 “난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희망하는 유럽은 실패한 것”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았다.


 이로써 독일을 향한 난민의 행렬은 더욱 늘어나겠지만 독일의 국제적 위상과 소프트파워는 한층 격상될 전망이다. 일례로 유대인 학살로 독일과 가장 비극적 역사 유산을 가진 이스라엘에서조차 독일에 대해 호감을 갖는 여론 비중이 70%를 넘었다. 최근에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 정착하는 유대인이 2만 명에 달할 정도로 화해 무드가 한창이다.


 지난 3일 메르켈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EU 지도자들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기존 난민 정책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유럽 차원의 난민 분담에 난색을 표하던 프랑스를 독일 입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난민을 유럽의 여러 국가가 분담해 수용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유럽 공동 난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오는 14일 내무장관 회의를 개최해 공동의 난민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유럽의 강대국 독일과 프랑스가 기본 정책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영국 역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수천 명의 난민 수용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유화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난민에 대해 가장 적대적 입장을 고수했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조차 난민 분담 원칙에 대해 적극 반대에서 모호한 태도로 돌변했다. 최근 헝가리에 진입한 난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유럽 차원의 난민 분담이 헝가리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EU집행위원회는 현재 회원국의 인구와 경제 수준, 실업률 등을 고려해 난민을 분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에 이미 난민 분담이 논의됐지만 폴란드·헝가리·스페인 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난민 분담을 결정한 뒤 이를 수용하길 거부하는 회원국은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을 예정이다. EU의 난민 대책은 오는 10월 중순 예정된 유럽 정상회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난민 사태의 원활한 해결은 인간다운 사회를 지향하는 유럽의 정체성과 직결되지만 동시에 유럽 통합의 최대 성과인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를 지키는 데도 필수과제다. 유럽 15~24세 청소년의 57%는 “EU란 원하는 대로 여행하고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자유”라고 여론조사에서 답했다. 난민의 흐름을 저지하거나 돌리기 위해 국경에 담을 쌓고 통제를 강화한다면 유럽이 실현한 가장 커다란 성과를 부정하는 셈이다.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남유럽과 동유럽 회원국들이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모습이 특히 이기적이고 모순되게 비쳐지는 이유다.


중동·아프리카 정치 안정대책 시급 때로는 충격적 비극이 정책의 흐름과 여론의 방향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이번 사태는 유럽이 말로만 인도주의를 외치지 않고 실제 전쟁과 독재의 피해자들을 끌어안아 평화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기회다. 르몽드지가 사설에서 밝혔듯이 1920년대 인구 3700만의 프랑스는 무려 14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 난민을 수용한 역사가 있다. 21세기 인구 5억의 EU는 주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여 인도주의를 몸소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다 구조적인 대책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안정적인 정치질서 수립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덧붙여 선진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라면 세계적 난민 위기에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나 스웨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주의 난민 수용정책은 그 나라의 이미지와 소프트파워를 크게 키워주는 중요한 요소다. 게다가 한국의 적극적 행보는 편법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신조의 일본이나 군사력을 과시하는 시진핑의 중국과 대비해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인도주의 민주국가의 모범으로 각인될 것이다.


조홍식 숭실대 정외과 교수 및 사회과학연구소장. 프랑스 파리정치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저서로는 『유럽의 부활』 『동아시아와 유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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