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막 두른 채 3년…도심 '유령빌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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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3호 터널에서 도심 방향으로 빠져 나오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건물이 있다. 중구 남대문로2가의 옛 상업은행 본점 빌딩(지상 13층, 연건평 4천4백평).

건물 겉에는 방진막(공사장 먼지를 막는 장치)이 쳐 있긴 하지만 3년째 공사가 중단되면서 유령빌딩으로 남아 도심의 흉물로 변했다.

이렇게 된 데는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옛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친 1999년 본점을 이전하면서 이 건물을 SGS컨테크라는 부동산 개발업체에 3백70억원에 팔았다.

SGS컨테크는 당초 미국 동포 자금을 끌어들여 이 빌딩을 매입했다는 소문과 달리 매입 대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했다.

SGS컨테크는 이곳을 고급 아파트로 리모델링해 분양하려 했으나 서울시가 도심에 주거시설을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자 업무용인 오피스텔 '센터포인트'로 바꿔 분양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경기 침체 등으로 분양이 잘 안되자 리모델링을 맡은 현대건설이 2000년말께 공사를 중단했다. SGS컨테크에 1백20억원을 빌려준 데다 대출보증까지 선 판에 분양이 안돼 공사비도 나오지 않자 부득이 손을 뗀 것이다.

이때는 현대건설도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공사비를 계속 넣을 수 없고, 빌딩을 인수할 수도 없었다. SGS컨테크도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

함께 매입한 인근 옛 한일은행 빌딩(1천2백10억원)을 리모델링.분양해 생긴 수입으로 센터포이트의 공사비를 대려 했으나 이마저도 안돼 손을 들고 말았다.

한일은행 빌딩은 매각 잔금을 받지 못한 우리은행이 공매해 롯데그룹에 넘겨버림으로써 SGS컨테크는 계약금 1백20여억원만 날린 셈이 됐다.

옛 상업은행은 이런 가운데 3년 가까이 유령빌딩으로 남아 손실만 쌓고 있다. 현대건설은 대여금.공사비 등 4백30억원이 물렸고 우리은행도 이 빌딩 대출금(2백90억여원)을 모두 받지 못한 상태다.

SGS컨테크의 경우 한때 40여명이던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빌딩은 지방세가 체납돼 서울 중구청이 공매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개발되기 위해선 다음달 중 있을 공매에서 주인을 만나야 한다. 몇몇 부동산 개발업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누가 주인이 되든 현대건설과 우리은행은 일정 부분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담보설정권(일종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 관계자는 "SGS컨테크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사업을 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겼다"며 "채무가 빌딩 값보다 많아 쉽게 공매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황성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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