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월세난 놔두고는 경제 못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미친 전셋값’이 일상이 돼버렸다. 전셋값은 2009년 3월 이후 6년6개월(78개월)째 오르고 있다. 이 기간 중 상승률이 47.5%다. 집값의 60%가 안 되던 전셋값 비율은 72.4%까지 치솟았다. 전세 사는 이들에겐 2년마다 돌아오는 재계약이 공포가 된 지 오래다. 서울·수도권에선 전셋값이 억 단위로 뛰어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서울 전셋집 중 24%가 보증금 3억원 이상이다. ‘전세 대란’이 중산층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셋값이 뛰는 건 월세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지난 7월 전국 주택의 월세 거래 비중은 전년 대비 5%포인트 높은 41.5%를 기록했다. 낮은 금리에 실망한 집주인들이 보증금보다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집값이 치솟던 고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주택시장은 물론 경제 전체에 부담을 안긴다.

 무엇보다 소비 위축이 문제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1.5%다. 은행의 전세보증금 대출은 높아야 3%다. 하지만 월세는 연평균 7.4% 금리로 환산해 받고 있다. 기준금리의 4배(연 6.0%)를 상한으로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무색하다. 이에 따라 지난 2분기 가계의 주거비 부담이 일 년 전보다 무려 22% 증가했다. 사상 최고다. 소비 심리가 좋아질 리 없다. 한국은행은 월세가 10% 오르면 가계 소비는 0.2% 감소한다고 분석한다. 소득이 적고 젊을수록 그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집주인들은 월세로 받은 돈을 소비하기보다는 저축해버린다.

 가계부채 급증도 전·월세난 탓이다. 지난 1년 새 가계 부채는 100조원 가까이 늘어 1100조원을 돌파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사거나 전세금 대출을 받은 사람이 급증했다. 전·월세난이 주택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나온 부동산 대책 8개 중 7개가 전·월세 시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난 2일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 역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에 역점을 뒀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에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 서민과 젊은이를 위한 공공임대 주택 공급은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 행복주택만 해도 20만 호에서 14만 호로 규모가 준 데다 착공과 입주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장 전체의 수급도 살펴야 한다. 수도권 전·월세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는 재건축·재개발은 사업 시기 분산 등으로 전·월셋값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시범적으로 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월세 인하도 임대시장 전체의 월세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경제 전체를 살피는 현명한 주택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