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 체질 개선은 좀비기업 정리에서 출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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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정부 관계자들이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을 잇따라 촉구하고 나섰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화 부문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기업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민간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이 만성적 한계기업인 ‘좀비기업’을 솎아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산업 환경은 위험 수위에 육박할 만큼 악화되고 있다. 산업 재편 없이는 어떤 경제 정책도 백약이 무효인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외부 감사 대상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의 기업이 지난해 말 3295개로 전체 기업의 15.2%에 달했다. 이 중 10년 동안 한계기업에 오르내리는 기업도 73.9%나 된다. 대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중도 2009년 9.3%에서 지난해 말 14.8%로 늘었다. 회생 가능성은 작은데 채권단 등의 지원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일명 ‘좀비기업’이 기업 6개 중 한 개꼴인 셈이다. 2009~2014년 일반 기업의 부채 비율은 준 반면 이들 한계기업은 오히려 늘었다. 금융권의 기업 대출이 이들 좀비기업의 연명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우리 산업은 중국발 경제위기 속에 수출 부진과 주력 산업의 실적 부진 등 이미 도처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한계기업 정리를 필두로 한 산업 구조조정을 서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채권단 중심의 개별 기업 대상 재무적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성동조선 등의 금융권 구조조정 실패 사례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기왕에 윤 장관이 유화 구조조정론을 꺼냈으니 유화산업부터라도 정책당국과 전문가·기업이 함께 산업 정책의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적극적 중재와 협의를 통해 성공한 구조조정 모델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산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채권단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