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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진 장사는 아닌 것 같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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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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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에 대한 셈법은 다르기 마련이다. 공급자와 수요자, 거간꾼의 꿍꿍이셈이 어찌 같을 수 있겠나. 이문(利文)이 없는 듯 이문을 챙기는 더듬수가 무릇 장사의 지혜일 것이다. 어쩌면 공직사회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여론의 공격에 귀 닫고 입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려면 쉽게 발끈해선 안 될 일이다.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어리숙하지 않기 위해선 눈치가 있어야 한다. 목청 큰 상대방에 주눅들지 않으려면 만만치 않은 끈기와 뚝심, 맷집도 필요하다.

 포스코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비슷한 분위기다. 지난 3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의 ‘부패척결’ 선언과 함께 시작된 수사는 또 하나의 관문을 지나고 있다. 3일 소환된 정준양 전 회장에 대한 조사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검찰이 정준양을 끝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할지 정치권을 향한 제2라운드를 치를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수사팀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정치적이라는 비판은 감수할 수 있지만 무능력하다는 비난은 참을 수 없다”는 기류가 있다.

 포스코 사건에 대한 언론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6개월가량 계속된 수사에서 눈에 띄는 실적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정동화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것이 증폭제가 됐다. 정동화와 정준양을 연결고리로 전 정권 실세들로 향하려던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과 함께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검찰의 속내는 언론의 평가와는 각도가 달라 보인다.

 검찰 내부에선 ‘실패한 듯 실패하지 않은 수사’라는 설명이 나온다. 지금까지 10여 명을 구속한 것을 실적으로 내세운다. 하청업체에 대한 포스코의 갑질을 적발한 것도 의미 있다는 것이다. 국민기업의 정상화에 검찰 수사가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자평한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된 수사라는 점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최근 7명의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추가로 투입되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중단 없는 사정(司正)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했다.

 청와대도 검찰 수사에 큰 불만이 없는 눈치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정권이 기업 하나를 망쳐놨다”며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포스코 정상화를 위해선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번 수사가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검찰이 중심을 잡고 수사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전해진다. 집권 3년차지만 검찰 수사로 인해 기업을 컨트롤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전 정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충분히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과 기업인들만 검찰 수사에 떨떠름해할 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은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한 것이다. 특히 검찰은 위기를 기회를 바꿔놓은 셈이다. 그러면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의 존재가 급부상하고 있다. 밑진 장사를 한 줄 알았는데 실속은 챙긴 것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임자 선정을 둘러싼 검찰 내 권력지형도 바뀌고 있다. 검찰이 쉽게 포스코 수사를 털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포스코 수사에 대한 평가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청와대는 아마도 정치적 논리에 근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잣대가 달라야 한다. 만약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포스코와 하도급업체의 비리 관계를 수사하겠다”고 했다면 그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의 목표와는 다른 수사를 해놓고 현 상황에 따라 해석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권과 자신의 입맛에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맹목적 충성도 배신의 정치만큼 위험한 것이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선정이 정권에 대한 충성 경쟁으로 비화될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 정부가 끝난 뒤에도 서초동의 장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잡상인처럼 대접받아서야 되겠나.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