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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측근 “속물 캐머런, 게으른 알코올 중독자 베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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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캐머런 영국 총리(左), 베이너 미국 하원의장(右)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e메일 스캔들’의 핵심이 사법 처리 여부에서 ‘막말 논란’으로 옮겨 붙었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사용한 e메일 내용에 클린턴이 측근들과 나눈 막말성 대화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31일 클린턴이 2009~2010년 사용한 개인 e메일 4368건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개인 e메일을 통해 국가 기밀을 부적절하게 다뤘다는 의혹에 대해 법원이 내년 1월까지 클린턴 전 장관의 e메일 내용을 전부 공개하라고 명령한 데 따른 조치다.

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특보를 지낸 시드니 블루멘털은 e메일을 통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속물(snobbish)’이라고 표현했다. 2010년 캐머런이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한 직후 “보수당 정부가 초긴축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킨 이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내놓은 평가다. 또 당시 취임을 앞둔 윌리엄 헤이그 전 영국 외무장관에 대해서는 “뼛속까지 반 유럽주의자로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클린턴은 블루멘털이 보낸 e메일에 대해 “보내준 내용을 남편 빌과 함께 읽었다”며 “항상 당신의 통찰에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보내달라”고 답장했다.

 블루멘털은 존 베이너 미국 하원의장에 대해서도 ‘수상쩍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2010년 11월 2일 클린턴에게 보낸 e메일에서 “베이너는 알코올 중독(alcoholic)이고 게으르며 어떤 원칙도 없다. 수상쩍은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베이너 의장이 하원 내에서 존재감이 약할 뿐 아니라 젊고 보수적인 의원들은 그를 경멸하고 있다”며 “근심과 걱정에 찌들었고 뻔하고 텅 빈 인물”이라고 악평을 쏟아냈다.

 클린턴과 측근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는 내용을 e메일로 주고 받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일 클린턴의 e메일 내용에 대해 “클린턴 전 장관의 측근들은 유독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며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의 e메일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2010년 방북 보고서도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당시 카터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동이 무산된 비화가 실려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불법 입국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스를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 계획을 구상하며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제안했다. 하지만 백악관이 한 달 가까이 둘의 회동에 대한 승인을 지연시켰고 결국 회동이 무산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뒤늦게 북한을 찾아 재차 회동을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으로 회담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e메일에는 인물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클린턴의 평소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클린턴이 “국무부의 기밀용 e메일을 사용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며 짜증을 내는 내용은 물론 측근에게 아이패드를 충전하는 방법이나 뉴스 어플리케이션을 업데이트하는 방법을 묻는 내용도 있다. AP통신은 클린턴이 측근에게 “아이패드가 와이파이에 연결됐는지 어떻게 확인하는지 알려달라”고 보낸 e메일을 인용해 IT와 관련한 기본적인 지식에 약하다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는 총 7121쪽에 달하는 e메일 내용 중 클린턴이 재임하던 시기에 기밀로 분류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AP통신도 클린턴이 개인 e메일 사용과 관련해 형사 범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소 여부와는 별개로 측근들과 나눈 부적절한 대화가 공개되며 대선 주자로서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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