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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뒤쫓는 코끼리, '차이나 쇼크'에 건재한 인도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는 최근 인도 뉴델리와 뭄바이에 판매점을 열었다. 한 대에 최고 수십억원이 넘는 고급 스포츠카를 인도에서 팔겠다니. 예전같으면 멍청한 전략이라고 비난받았을 터다. 실제 페라리는 인도에서 사업을 하다 3년 전에 포기하고 철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차이나 쇼크’에 직격탄을 맞고 고전 중인 세계 명품업체들이 코끼리(인도)를 찾고 있다. 버버리, 지미추, 발렌티노 등은 최근 인도에 진출하거나 매장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 명품을 빨아들이던 블랙홀이었던 중국이 최근 성장 둔화에 빠지면서 명품업체들이 새 시장을 찾아낸 것이다.

크레디트 스위스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백만장자는 18만2000명으로 추산된다. 부자가 늘면 명품 시장도 성장하는 법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인도 명품 시장은 2014년에 전년보다 25% 성장해 약 2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시장규모(230억 달러)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성장률은 중국(7%)을 앞섰다. 2019년까지 인도 명품 시장은 56억 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백만장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기회를 잘 활용한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된다. 인도 경제가 지금 그런 형국이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연율)이 7.5%를 기록하며 중국을 앞섰다. 2분기는 7% 성장에 그쳤지만 중국 쇼크에 빠져 휘청대는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도 경제의 고질병과 같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말 8.6%에서 7월 말 현재 3.78%로 떨어졌다. 지난해 6월 이후 국제 유가가 반 토막나며 원유 수입국인 인도의 부담이 줄어들어서다. 라구람 라잔 인도중앙은행(RBI) 총재가 ”500억 달러의 선물을 받은 셈“이라고 말할 정도다. 물가가 떨어지며 국내 수요도 최근 3개월간 7.8% 늘었다.

경제 기초체력도 튼튼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도가 만성적으로 겪어온 경상수지 적자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도 지난달 21일 현재 3554억 달러를 기록하며 외환 위기에 노출될 위험도 줄었다. 통화 가치도 안정됐다. 중국 상하이 증시가 정점을 찍고 하락한 6월12일 이후 2일까지 브라질 헤알화(-16.46%)와 러시아 루블화(-17.81%),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7.71%) 등 브릭스 국가의 통화 가치가 곤두박질쳤지만 인도 루피화(-3.38)는 선방했다. WSJ은 “인도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낮고, 중국과 경쟁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데다 내수 비중이 커 세계 교역규모가 축소하는데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씨티그룹과 모간스탠리는 올해 인도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경제의 격랑 속에 인도가 순항하는 바탕에는 ‘모디노믹스’가 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 정책이다. ‘친 시장 정책’을 표방한 모디 총리는 노동 개혁, 세제 개편,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인도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

특히 인도를 제조업 허브로 키우기 위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캠페인을 통해 제조업 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인도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은 16% 정도다. 이를 2022년까지 25% 수준으로 끌어올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 모디의 복안이다.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애플의 납품업체인 대만 팍스콘이 인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샤오미도 인도에 조립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WSJ에 따르면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늘어나 올해 3월 말까지 310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건 아니다. 모디의 노동법, 토지수용법, 부가가치세법 개정 등 3대 경제개혁이 야당과 시민단체의 저항에 발목 잡히고 있다. 기업의 공장 출고가 흐름을 보여주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말부터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국영은행의 부실대출도 늘고 있다. 올 3월 말 기준 부실대출은 전체 대출의 4.6%인 490억 달러로 최근 10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흥국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이머징마켓그룹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개혁 정책이 지연되는 건 걱정스럽지만 모디 총리의 정책 중 20%만 달성돼도 인도는 5~8년 전 중국과 같은 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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