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보호막' 여야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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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북송금 특검의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13일 문희상(文喜相)대통령비서실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묘하게도 노무현(盧武鉉)대통령 대신 비서실장이 주재하도록 돼있는 금요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였다.

이에 대해 윤태영(尹太瀛)청와대대변인은 "文실장의 개인 의견이자 희망"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文실장의 측근도 "盧대통령과 사전에 만나 조율한 얘기는 아니다"라며 "6.15 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오랫동안 해오던 자신의 생각을 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文실장은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수사 여부가 논란 중이던 지난 1월 중순에도 "통치행위라면 그냥 덮고 넘어가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수사 자체에 반대입장을 표명했었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자 盧당선자는 "한나라당이 제기한 7대 의혹을 엄정히 수사해야 한다"고 文실장의 입장을 뒤집었었다.

때문에 이날 文실장의 'DJ수사 반대'발언도 여론의 반향을 떠보려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던져놓고 여론의 반응을 봐서 최종 입장을 결정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당초 청와대 일각에서 DJ조사를 반대한 건 사실이다.

민주당쪽 사정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盧대통령도 동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여론의 반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대세였다.

따라서 동교동 출신인 文실장이 동교동을 향해 盧대통령 대신 '립 서비스'를 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 놓고 여론의 반대로 어쩔 수 없어 DJ조사로 가는 수순을 밟는다는 얘기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더 문제다. 비서실장이 미묘한 사안을 놓고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피력했다면 문책 사유가 된다.

결국 이는 국정운영시스템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정작 DJ 특검수사의 주무수석 중 한사람인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은 까마득히 몰랐다. 오히려 서면조사 정도는 해야 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윤태영 대변인도 전날 DJ수사 불가방침을 확인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아니다"고 했다. 文실장은 그간 "이 정권의 2인자는 시스템"이라고 할 정도로 청와대 내의 토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주창해 왔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文실장이 일단 총대를 멘 게 분명하다.

文실장은 12일에도 제주에서 열린 기자협회 세미나에 참석, "대통령이 언론을 죽이자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 언론을 향해 "시도때도 없이 건드리고 흠집내는 묘한 마조히즘(사디즘의 잘못인 듯)같은 이상한 게 있다"고도 말했다. 이 역시 대통령 대신 총대를 멨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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