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특수활동비, 국회는 ‘의원 쌈짓돈’처럼 쓰면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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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30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의 여야 간사 회동에서 ‘특수활동비 제도개선 소위’ 설치 문제가 또 결렬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의 특수활동비 집행을 감시하기 위해 국회 내에 관련 소위를 꾸리자고 주장하면서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까지 취소됐는데 이틀 뒤 간사협의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특수활동비는 ‘묻지마 예산’이다. 이걸 투명화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엄중히 받고 있다”고 여당을 압박했다.

 이런 야당의 주장엔 일리가 있다. 특수활동비의 존재 근거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운영계획 지침’에 나와 있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란 딱 한 줄이다. 이 한 줄에 기대 올해 예산에 책정된 특수활동비가 8800억여원이다. 이 돈에 대해선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영수증조차 낼 필요가 없다. 이러니 “특수활동비를 투명화하라”는 요구는 납세자들이 듣기에 속 시원하다.

 문제는 이렇게 주장하는 야당이 속한 국회도 특수활동비를 받는다는 점이다. 올해 책정된 특수활동비 가운데는 국회 몫 84억원도 있다. 전체 특수활동비에서 1%가 좀 안 된다. 전체의 50%를 넘는 4500억여원의 특수활동비를 쓰는 국가정보원에 비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 관행을 보면 과연 국정원과 국회의 특수활동비 중 어느 쪽이 ‘묻지마 예산’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정원은 특수활동비의 존재 근거로 명시된 ‘기밀 정보 및 사건을 수사’하는 기관이다. 역시 특수활동비를 받아 쓰는 경찰청·법무부·국방부·청와대 등도 ‘수사에 준하는 국정활동’을 한다. 이런 활동을 하다 보면 ‘영수증을 끊을 수 없는 씀씀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는 어떤가. 특수활동비를 어떻게 쓴다는 기준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여야 원내대표가 월 2000만~3000만원 특수활동비를 받아쓴다” “여야 불문하고 국회 상임위원장이 되면 월 1000만원 안팎의 특수활동비를 받는데, 그중 일부를 여야 간사들에게 용돈으로 나눠준다” 등등의 얘기는 귀에 따갑게 들었다.

 실제로 지난 5월 국회 특수활동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이 여당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때 받은 특수활동비를 각각 가족 생활비와 자녀 유학비 등에 썼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야당은 “국회가 솔선수범을 보이자는 얘기가 있지만 동시에 사용내역을 깐다고 저쪽(국정원 등)이 깔 것도 아닌데 괜히 국회만 우스운 꼴이 될 수 있다”(30일 안민석 간사)란 속내를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여당이 특수활동비 소위를 설치하는 데 반대하는 배경에도 이런 ‘쌈짓돈 챙기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특수활동비가 ‘묻지마 예산’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국회부터 그 내역을 ‘커밍 아웃’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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