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비상<6>|취직난의 여차…되게 원이 붐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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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3월 경북대 대학원에 입학한 이현복군 (27·철학과 2학기)은 요즘 때아닌 독일어회화공부에 열중하고있다.
경북대 철학과출신인 이군은 4학년 재학시 일반기업체나 중·고교 교사직에 취업을 희망했으나 같은과 친구중 단 한사람도 직장을 얻지 못하는것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아예 졸업전 취업을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취업을 기다리며 허송세월만 할 수는없었다.
그래서「특별한 목적없이」졸업과 때를 맞추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난 한해대학원에 다니면서 취업의기회를 유심히 엿보았다.
그러나 별무소득.
대학원졸업후의 진로전망마저 불투명하자 이군은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군은 지난해 12월초 2학기 종강과 함께 서울로올라와 독일문화원에 등록, 독일어회화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 졸업후 독일유학을 가기위한다는것이 이군이 뒤늦게 세운 목표다.
취직을 못해 선택한 대학원진학이 해외유학으로까지 연장되고만것이다.
전반적인 고학력선호풍조속에 가중된 취업난이·직장못구한 대졸생을 대거 대학원으로 몰아가면서 학력인플레의 가속과 대학원의 질저하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있다.
대학원은 이제 더이상 「학문의 길」 을 걷는「교수요원」들의 집합체도,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최고급 전문인력을 공급하는 상아탑도 아니다.
일반대학의 연장선에서 급속히 대중화의 추세를 밟고 있다.
대부분 대학원진학생의동기는 심오한 학문의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졸업후 취업때까지 「일단 시간을 버는 피난처(?)」「군입대연기용」「병역의 단기혜택」「간판을 얻기 위해서」「놀고있는것보다는 공부라도하고 있는 것이 나아서」등 학문외적인 이유가 더 많은것이 숨길 수 없는 실태다.
오는 3월 성대 대학원에 입학할 박모군 (25·성대경제학과4년) 은 전공덕택에 취업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으나 졸업직후의 입대문제가 걸려 있었다.
궁리끝에 6개월간 복무, 소위로 제대하는「특수전문요원」 입대의 길을 밟기로 했다.
『군대에서 3년을 보내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대학원에서 2년동안 공부하고「특수전문요원」혜택을 받아 제대하면 남들보다 우월한 학력으로 좋은 조건의 취직을 할수 있을것 같아 진학했어요.남들보다 사회진출이 1년 빠르니 일석일조가 아닙니까』
전국 각대학마다 2∼3개씩 간판을 건 특수대학원도대학원붐에 한몫을 거든다.
「대졸학력만으로는 치열한경쟁에서 뒤진다」는 절박감들이 이들 특수대학원으로 직장인들을 몰아간다.
대학원과 대학원생의 숫적증가를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세대 기획실장 송재,교수는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학원의 경우「양」적 성장을따라가지못하는「질」의 문제에 심각성이있다』고 지적한다.
급증하는 대학원생을 가르칠 시설·교수등 제반여건이 태부족인 상태에서 교육을 강행하다보면 결국 껍데기뿐인「최고 두뇌집단」만을 양산해 놓는다는 우려다.
말하자면 「학력 인플레」현상만을 부채질해 놓는다는 지적이다.
53년 서울대등 일부대학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우리나라 대학원교육은 85년 현재1백86개 대학원(일반대학원73개, 특수대학원1백13개)으로 증가했으며 일반대학원재적생수만 해도 6만2천8백62명 (석사·박사과정 포함)으로 팽창했다.
여학생수만해도 1만1천14명.
이같은 대학원의 팽창이 본격화된것은 지난 79년부터.
문교부의 이른바「대학원 중심교육방침」이 정해지면서 79년이전 연간 1천∼2천명의 증가에 머물렀던 대학원 정원이79년 이후에는 6천∼1만명씩 불어나는 급팽창의 시기를 맞게됐던 것이다.
대학원 정원의 파격적인 증가에도 대학원 입학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역현상을보여왔다.
서울대 대학원의 경우 지난78년에는 경쟁률이 2대1에 머물렀으나 지난해 12월엔 일반대학원및 3개특수대학원의 석사과정 2천2백4명 모집에 8천3백47명이 지원, 3·79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연세대도 85년 전기대학원모집경쟁률이 3·9대1 (84년은 2·5대1) 을 나타냈으며 고려대 역시 4·7대1 (84년 3·7대1) 로 해마다 증가현상을 보여주고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같은 대학원생의 팽창요인을▲81년실시된 졸업정원제로 기본적으로 대학생수가 급증했고▲대학원 출신자들에 대한 병역단축혜택▲산업구조의 변화에따른 전문지식인 수요급증▲고학력 지향의 사회풍조등과 함께 무엇보다도 극도의 취업난을 들고있는 실정이다.
그와 비례해 가장 문제시되는것은 대학원 교육의 내실문제.
경희대 대학원장 김봉걸교수는 『대학원의 시설·교수·교육내용등 내실문제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현재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그것은 오래 전부터 누적돼왔다』 고 말하고 그 원인으로는▲대학원에 전임교수가없는점▲말만 대학의 중심일뿐 시설·연구보조금등을 대학에 의존, 「더부살이」를 하는 실정과▲재학생을 위한 순수한 장학금마저 거의 없는 점등을 들었다.
붐비는 대학원, 그러나 실속없는 대학원교육, 다음에 올 사태는 무엇일까.<고도원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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