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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워터파크 몰카’는 인격 살해의 중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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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디지털 기술 발달과 함께 평범한 시민들이 신종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사례가 확산되는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파문을 일으킨 국내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 몰카 동영상 촬영자가 잡고 보니 20대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준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동영상을 직접 유포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팔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 상대 몰카는 주로 남성 개인의 성범죄 영역이었다. 그러나 피의자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젠 이런 동영상이 아예 사고파는 상품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이 범죄에 여성들도 가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 전용 공공장소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는 막대하다. 9분41초와 9분40초짜리 두 개의 동영상을 통해 얼굴과 신체가 노출된 피해자만 200명이 넘는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은 21명의 전담 수사팀을 꾸렸고, 동영상 유포 사이트 37개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촬영된 동영상인 데다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둔 성인 사이트에도 돌아다니고 있어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지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범죄는 끊임없는 복제 기능으로 인해 한 번 피해를 당하면 피해 복구가 안 되는 속성이 있다. 게다가 디지털 범죄는 점차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이 동영상 범죄다. 동영상 유포뿐 아니라 동영상이 있다는 루머로 특정인을 공격하는 등 동영상은 그 자체로 협박 무기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해킹에 의한 사생활 공개 디지털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엔 캐나다의 애슐리 매디슨이라는 기혼자 혼외 만남 주선 사이트가 해킹당해 회원 정보가 공개되면서 최소 2명이 자살하는 등 엄청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디지털 범죄는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범죄 도구가 되고, 피해자는 무차별 다수의 시민이며, 동시에 평범한 네티즌들이 별 죄의식 없이 범죄를 확산시킨다는 게 문제다. 갈수록 남의 사생활을 파괴하고 타인의 인격을 살해하는 디지털 범죄가 대중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디지털 범죄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규범은 미미하다. 몰카 촬영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규정이 있긴 하지만 좀 더 강력한 단속과 사법부의 처벌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디지털 범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드높이는 등 디지털 문화를 정화하는 새로운 범사회적 규범도 시급히 수립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