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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동차 정비 공장 짓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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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수입차 정비소 전쟁 2탄

이르면 내년 초 차량시설이 들어서는 세곡동 부지. 인근 리엔파크 아파트에는 총 2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세곡동에 6층짜리 정비·주차시설 추진
주민들 환경 오염, 교통사고 증가 우려
아우디는 내곡동 정비소 지난달 법정 패소

지난 19일 오후 강남구 세곡동 리엔파크 아파트 앞. 단지 곳곳에 ‘생태계를 파괴하는 벤츠 정비소 물러가라’ ‘강남구청은 리엔파크 주민을 이방인 취급 각성하라’란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르면 올해 말 추진되는 차량시설 건립 공사에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강남구청에 따르면 이 아파트 2~3단지 앞 약 5081.5㎡(약 1600평) 규모 부지에는 6층(지하1층·지상5층) 높이의 정비·주차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지하 1층에는 수리소 등이 들어서고, 지상 1~5층에는 전시관과 주차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비·주차시설이 들어설 부지 옆에는 2.83㎞ 길이의 세곡천이 흐르고 있다. 그 양 옆으로 1.83㎞ 길이의 자전거전용도로가 있다. 5개 단지로 구성된 리엔파크 아파트에는 2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날 만난 주민 김모(42)씨는 “인근 도로가 좁은 왕복 3차로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다니는데 여기에 자동차 관련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교통사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는 “차량시설에서 발생할 유해 물질이 세곡천을 오염시키고, 소음까지 생기면 주민 생활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건축 허가를 담당하는 구청에 공사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6월 말이다. 건립 용도는 ‘주차 전용 건축물’이다. 주민들은 “주차 공간이 아니라 정비 공장으로 개조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땅의 서류상 건축·소유주는 한 신탁회사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 건물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그 신탁회사가 아닌 유명 수입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 벤츠로 추정한다. 건물이 완공되면 소유권이 바뀔 것이라고 주민들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벤츠 측은 “정비소 건립을 위한 허가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건립을 요청한 신탁회사 및 부지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세곡동 리엔파크 아파트 앞 인도에 차량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조진형 기자]

 이런 가운데 강남구는 월요일인 지난 10일 민원조정회의를 개최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회의 개최 사흘 전인 금요일에야 이 사실을 통보받은 데다 참석 대상자도 단지별 대표 2명 이내로 지정한 것에 반발하며 불참했다. 강남구의 민원조정회의 개최 알림 문서는 ‘주차 전용 건축물(주차장 및 근린생활시설인 수리점, 소매점, 휴게음식점 포함)이 지역 특성에 맞지 않고 소음과 발암물질로 주민들의 건강을 해칠 우려, 어린아이들의 교통안전 사고유발, 수리 고객들의 차들이나 전시 차량으로 교통난 가중, 대기업 자동차 정비센터화 될 우려가 있으므로 건축 허가를 반대한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민원조정회의를 개최하고자 하니 아파트 단지별로 2명 이내 대표들의 참석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1일 지하 1층에 세울 예정이었던 수리점이 소매점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구청은 공사를 승인해 준 상태다. 허가를 신청한 곳이 ‘신탁회사’라도 땅 소유권과 건축주가 분명하다면 허가를 안 내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일기 강남구청 건축관리팀장은 “허가 신청을 부당하게 보류시킨다면 오히려 구청이 행정소송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 측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완공될 주차시설이 나중에라도 정비를 목적으로 개조된다면 그때 가서 재심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입차 시설과 관련된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우디코리아는 2013년부터 서초구 내곡동의 한 부지에 정비·주차시설 건립을 추진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주민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 안전을 우려해 반발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주차장 용도였던 이 대지에 주민들은 정비소가 들어올 것으로 보고 반대했다. 소송으로 비화된 갈등은 지난달 법원이 주민 손을 들어주며 막을 내렸다.

 현재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있는 수입차 정비공장은 BMW 9곳, 아우디 4곳, 메르세데스 벤츠 7곳이다.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의 상당수 매출은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권에서 발생한다. 고급차일수록 잦은 정비가 필요해 정비소와 관련 시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비소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시설이 처음 신고된 용도와 목적에 따라 운영되는지, 추후라도 주민에게 재산권 피해가 발생하는지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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