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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월권행위" 김대환 노동, 노동계 편든 인권위 공식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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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사실상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의견을 제시한 데 대해 노동부가 '월권'이라고 공식 비난하고 나섰다.

김대환(사진)노동부 장관은 15일 주한 외국인 투자기업 경영자들과의 조찬강연에서 "인권위의 의견 제시는 균형을 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김 장관은 "국회에서 노사정이 대화하고 있는 가운데 인권위가 왜 월권적 행위를 했는지 의아스럽다"며 "이는 인권위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 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잘 모르면 용감' '비전문가들의 월권 행위' '단세포적인 기준'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인권위를 거듭 비판했다.

정병석 노동부 차관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의 의견은 시기나 내용적으로 적절치 않다"며 "총론적인 차원을 넘어 법안의 개별 조항까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일각에서도 인권위의 최근 일련의 권고나 의견이 월권적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권위가 개별 법안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의견을 낼 경우 각종 법안에 대해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받는 것처럼 인권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냐"고 반문했다.정부 법안은 종합적인 고려를 해야 하므로 인권보호 한 측면에서만 판단할 경우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권위는 출범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쏟아내 해당 부처와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인권위는 지난 6일 국회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발표, 존치를 주장해 온 법무부의 반대에 부닥쳤다. 사형제 폐지는 피해자의 인권 측면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많아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민감한 문제다.

이어 7일엔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의 일기장을 강제로 검사하는 관행은 아동인권 침해라며 개선 의견을 밝혔다가 교육부로부터 "교육자의 판단에 맡겨라"는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인권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기관이므로 월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권위 육성철 공보관은 "위원들이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잘 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의 시정 권고나 의견에 대해 피진정기관이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이를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인권위의 조사권을 강화하기 위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과 이은영 의원의 발의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도 올 2월 여성부.보건복지부.노동부 등에 흩어져 있는 차별시정기구를 인권위로 일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따라서 국회에서 인권위법이 개정되면 인권위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철근.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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