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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발 막는 길은 연미·화중·협일 외교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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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6 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2일 베이징에서 열린 ‘2015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시 주석은 다음달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승절 기념행사를 연다. [AP=뉴시스]

남북한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의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두 시간 앞두고 남북이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지만 언제든지 갈등이 고조돼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북·중 관계까지 악화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중국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10월 16일에는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다. 방중과 방미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논란도 적지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와 박 대통령의 8·15 광복 70주년 경축사 발표 이후 한·일 관계에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김흥규

이원덕

9월 이후에는 한국 외교가 주도권을 살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숙제도 있다. 남북, 한·중, 한·미, 한·중·일, 한·일로 이어지는 일련의 외교전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과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을 만나 해법과 전망을 들어봤다.


김정은에겐 체제 유지 위해 긴장 필요


-긴장의 극대화가 역설적으로 막판에 대화를 이끌어내고 최악의 상황을 피했는데.


▶이원덕(이하 이)=다행히 큰 고비는 일단 넘겼다. 최악의 상황이 기회로 반전됐다. 일회성 만남으로 끝내지 말고 뚫린 대화 채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일시적 도발이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위기 관리 메커니즘이 절실하다. 대화 채널이 열렸으니 통 큰 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김흥규(이하 김)=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긴장과 갈등이 필요하겠지만 북한도 극단적 군사 대결로 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남북은 대화를 확대하고 작은 기회의 창을 활용해 위기 관리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북한이 최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온 의도는.


▶이=목함지뢰 사건 이후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김정은이 주도해 포격 도발을 한 것 같다. 북한의 고립감이 커지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김=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 북한에 도움이 되고 북한이 전략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은 갈등을 감수하고라도 핵무기 체계를 완성하는 데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박근혜 정부와는 대화도 교류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남남갈등을 시도한 측면이 있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대화를 하자는 절박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중국을 의식한 측면은 없을까.▶김=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순응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압박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것 같다.


시진핑, 전승절 때 중국 부상 과시할 듯


-전승절을 처음 국제적 행사로 치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계산은.


▶김=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강대국이 된 중국의 부상을 세계에 보여주려 한다.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고 체제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있다. 일본이 보수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데,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전쟁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고 중국의 정당성을 부각하려 한다.


-일본은 그런 중국의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


▶이=흥미로운 건 아베 총리가 전승절을 전후해 중국을 방문하려 한다는 점이다. 일본에 압박을 가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간파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려 베이징에 가려는 건 전략적 판단의 결과다. 중국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고 역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니, 일본이 중국의 허를 찌르게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어떻게 보나.


▶이=박 대통령 취임 후 쌓은 외교적 자산이 한·중 관계인데 기회를 날릴 이유가 없었다. 북한을 다루는 데도 한·중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약 3년 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올가을 이후 외교 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3국 회담이 중단된 건 중국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한·일이 화해하는 무대를 중국은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김=박근혜 정부의 기조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는 원칙에 실용주의를 합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한 결정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다. 북한의 도발은 위기 증폭을 통해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막고 한·중 관계 강화를 저지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2013년 2월 시 주석 취임 직전에 3차 핵실험을 했다. 이번엔 전승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인데.▶김=중국 입장에선 대단히 불쾌하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북한은 미·중 관계가 개선될 때 도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주면서 미·중 간에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왔다.


-청와대가 방중 발표를 하면서 미·중을 너무 의식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한국이 미·중 양자택일을 하는 상황은 아니다. 한·미 동맹도 중요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도 중요하다. 방미 일정을 발표하고 방중을 발표한 것은 적절했다. 아베 총리가 방중을 검토 중인 상황이므로 일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


▶김=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그리고 전승절 행사 참석은 연미화중에 실용주의를 가미한 것이다. 대외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익 극대화를 노린 것이다.


박 대통령, 박수와 미소 타이밍 선택 잘해야


-기념식은 가더라도 열병식에는 가지 말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항일 전선에서 우리가 중국과 함께 싸웠으니 열병식이 항일의 의미를 갖는다면 참석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념식과 열병식을 쪼개기 어려울 것이므로 결국 참석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김=열병식에 참석 안 할 이유가 없다. 남의 잔치에 가서 행사를 쪼개라고 요구하는 건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우리도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일원으로서 중국군의 사열을 받을 자격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천안문 광장 앞에서 중국군의 사열을 받는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가능성은 없지만 북한군이 참석해 경례한다면 우리로서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부담 요인이다.


-열병식 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한·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김=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 중국이 참석하겠다는 시 주석의 긍정적 언질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중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과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략을 협력해 추진하는 데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지난 5월 러시아를 방문하면서도 전승절 퍼레이드에는 불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하자는 주문을 어떻게 보나.


▶김=가해자인 독일의 총리인 메르켈과 피해자인 박 대통령은 입장이 다르다. 메르켈의 지혜를 얻어야 할 사람은 아베 총리다.


-방중 기간에 정교한 ‘외교적 연기’가 필요할 텐데.


▶이=기본적으로 동북아의 평화 안정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중국의 역할을 각인시키는 행보가 필요하다.


▶김=갈등과 협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긍정적 역할을 하는 중견국 외교를 하겠다는 이미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차원의 관객이 지켜보니 박수와 미소의 타이밍 선택도 중요하다.


-김정은이 불참하면 북·중 갈등의 반영으로 봐야 하나.


▶김=북·중 관계는 1956년 8월 종파사건 무렵에 중국의 내정 개입 이후 최악 상황이다. 북한이 중국의 의지에 반해 핵무장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정상회담 전망은 밝지 않다. 북·중 관계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갖겠다는 것을 시 주석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중·일 관계는 어떤가.


▶이=미·일 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하면서 아베는 유연한 전략적 외교로 중국과의 정상회담도 해왔다. 이번에도 정상회담이 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중국도 아베의 역사 인식이나 담화 내용을 비난하면서도 실리적으로 중·일 관계를 개선·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국회담 틀 내에서 한·일 정상회담 해야


-아베 담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반응을 어떻게 보나.


▶이=매우 절제된 대응을 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전략적 포석이 담겼다. 동북아 다자외교 속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한·일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북한 문제를 생각해도 한·일 관계 개선은 필요하다.


▶김=향후 한국이 직면할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에 따라 절제된 반응을 한 듯하다.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고 중국은 신뢰 면에서 불확실하다. 미국은 선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좁다. 남북관계 개선이 좋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했다.


-아베 총리가 행동으로 화답할까.


▶이=큰 기대는 어렵다. 다만 한·중·일 3국 프레임 속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 원칙에 대한 합의는 이뤄질 수 있다. 만약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아베식 해법’을 갖고 올 가능성이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 등 하반기 외교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이=3국 정상회담은 올가을 외교 일정의 핵심 이벤트인데 낙관한다. 한·중·일 회담 안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실기할 경우 동북아 다자외교 무대에서 고립될 수 있고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김=당장 급한 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가 취할 건 연미(聯美)·화중(和中)·협일(協日)이다.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는 한·중 이익의 조화를 가져오는 외교를 추진하고, 일본과는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장세정·홍주희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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