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탄생 가능한 조건은 전 우주에 공평하게 주어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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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26면

COBE가 발견한 비등방 우주 배경복사 지도. 지도에서 붉은 곳은 주변보다 10만 분의 1도 정도 온도가 높은 곳이고, 파란 곳은 주변보다 10만 분의 1도 정도 온도가 낮은 곳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생명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 행성을 발견했다. 이 발견에 대해 바티칸의 호세 후네스 신부는 “새롭게 발견된 행성들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해 열려 있다. 가톨릭의 교리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믿음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으며, 인간은 절대 신의 창조적 자유에 대해 어떤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수개월 전에 교황이 직접 빅뱅 우주와 성경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 것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례적인 성명은 아닐 것이다.


아직 외계 생명체가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외계 행성이 하나 둘 발견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그 행성 중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주론적인 생명의 기원에 근거해 유추해 보고자 한다.

유인원과 인류를 연결하는 고리인 ‘루시’의 화석.

유인원과 현생인류의 연결고리 ‘루시’ 1974년 에티오피아 하다 유적지의 먼지로 뒤덮인 평원. 도널드 존슨과 톰 그레이는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협곡을 더듬고 있었다. 이미 다른 탐사대원들이 두 차례 이상 탐사를 마치고 발견한 것이 없다고 보고한 지역이었다. 존슨은 한 번쯤 더 탐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작업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던 그는 협곡의 한쪽 벽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석 번호 AL 288-1의 팔꿈치 뼛조각이었다.


인간이 원시 유인원에서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화석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인류 진화 이론에 의하면 원시 유인원 중 일부가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보호받기 시작한 두개골이 커지면서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직립보행은 했지만 아직 두개골이 유인원의 것과 비슷한 화석이 존재할 것이다. 존슨은 탐사팀을 동원해 AL 288-1의 팔꿈치 뼛조각이 발견된 협곡벽 주변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협곡벽의 하단부에서는 무릎과 골반의 일부를 포함한 AL 288-1의 다리 화석을 찾을 수 있었다. 발견된 다리 부분의 화석을 재구성해보니 명백한 직립보행 화석이었다. 그 다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발굴된 두개골 일부 조각도 맞춰 나갔다. 화석의 일부로 추정할 수 있는 두개골의 크기는 오늘날 침팬지의 머리 크기와 비슷했다. AL 288-1의 두개골은 다른 화석과는 달리 현생 인류보다는 원시 유인원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 화석이 인류의 조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루시’다.


균일한 우주에선 생명 탄생 불가능 하다 유적지의 연구자들이 원시 유인원과 현생 인류의 연결 고리를 찾고 있었던 시기에 천문학자들은 공허한 물리학적인 우주와 생명이 가득한 지구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찾고 있었다.


1965년 우주배경복사의 발견과 함께 승리를 쟁취한 빅뱅론자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답변하기 어려운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비판들 중에서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빅뱅은 영혼이 없는 우주론이란 것이다. 빅뱅우주에서는 생명이 탄생하기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빅뱅이 일어난 순간 이 우주는 균일했다. 그리고 우주 팽창을 시작한다. 이러한 우주 모형의 간접적인 증거는 우주 나이 30만 년에 방출된 복사에너지의 온도가 모든 방향에서 같다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우주의 밀도가 높은 곳이 있었다면 복사 에너지는 조금 늦게 방출됐을 것이고, 그 방향에서 관측된 복사 에너지의 온도가 다르게 관측됐을 것이다.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온도는 사방에서 모두 같았다. 즉 우주가 균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을 올려다보면 텅 빈 공간도 있지만 별들이 반짝이는 곳도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은 결코 균일하지 않다. 만일 정말 이 우주가 균일했다면 물질들이 밀집하는 공간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물질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지 않았다면 은하나 별이 탄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생명도 탄생할 수 없었다. 빅뱅우주에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이 우주는 영원히 균일한 팽창만을 하게 된다. 생명이 탄생할 수 없는 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빅뱅우주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한 것일까? 1970년대 에드워드 해리슨과 야코프 젤도비치는 현재 관측되는 은하의 분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태초에 거시 구조의 씨앗이 우주 전 공간에 뿌려졌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태초의 작은 밀도 차이는 137억년간 진화해 오늘 밤 볼 수 있는 은하와 별을 생성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밀도 차이가 정말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면 우주배경복사가 시작한 30만 년에는 그 밀도차의 크기가 대략 10만 분의 1 정도여야 한다. 만일 1만 분의 1 정도 보다 컸다면 은하와 별들이 이미 오래전에 생성하고 소멸해 현재에 인간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 크기가 100만 분의 1 정도 보다 작았다면 이 우주에는 아직 은하와 별들이 생성되지 못했고 따라서 현생 인류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 미세한 밀도차는 우주배경복사 온도 차이로 관측된다. 만일 10만 분의 1 정도의 밀도차가 정말로 있었다면 관측된 우주배경복사 온도에도 10만 분의 1도의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고밀도 지역과 저밀도 지역의 우주배경복사 온도는 밀도 차이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만 분의 1 정도 작은 차이는 1965년 펜지어스와 윌슨이 발견할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러한 정밀 관측은 남극이나 우주공간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 NASA는 1990년경 우주 공간에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Cosmic Background Explorer, COBE)을 띄운다. COBE는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지만 그 중에는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우주배경복사 온도의 차이를 관측하는 임무도 포함돼 있었다. 우주배경복사 지도는 천구의 지도로서 타원형으로 되어 있는 프레임은 마치 둥근 지구를 평면에 옮겨 놓은 것과 같다. COBE는 이 지도 위에 관측된 배경복사의 온도를 기록했다. 예상대로 관측된 배경복사 온도는 균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온도차이는 놀랍게도 해리슨과 젤도비치가 예측했듯이 10만 분의 1 단위에서 발견됐다. 그림에서 붉은 곳은 평균 온도보다 10만 분의 1도 정도 온도가 높은 곳이고, 파란 곳은 평균보다 10만 분의 1도 정도 온도가 낮은 곳이다.

1 미 항공우주국이 정밀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위해 쏘아올린 WMAP.

2 구 소련의 우주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 기념 우표.

정밀 관측에서 미세한 밀도 차이 확인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주배경복사 방출 당시 주변보다 10만 분의 1 정도 더 밀도가 높은 지역들이 있다. 이 미세한 고밀도 지역으로 주변의 물질들이 천천히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70억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팽창하는 힘보다 내부의 중력이 더 커진 고밀도 지역들도 생겨난다. 이러한 곳은 우주팽창에서 분리돼 독자적인 중력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원시 은하가 생성되고, 시간이 더 흐르면 별과 행성이 탄생하며, 그 일부 행성에서는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온도 차이 분포가 특정 지역에 한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천구 전체에 그 온도 차이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 전 우주에 걸쳐서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태양계도 특별한 초기 조건에서 생겨난 지역이 아니고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이 사실은 2000년 초와 2010년경에 각각 투입됐던 정밀 우주배경복사 관측 위성인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와 플랑크(Planck)를 통해 재확인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COBE가 발견한 비등방(非等方) 우주배경복사 지도를 생명의 우주론적인 기원 ‘화석’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류의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루시의 화석과 COBE가 발견한 우주론적인 생명의 기원을 함께 놓고 보고 싶다. COBE의 비등방 지도는 우주에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원론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태초에 생명의 씨앗이 뿌려진 것일까? 그리고 무슨 이유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 우주 전 공간을 걸쳐서 공평하게 부여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오늘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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