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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조선 선비들 “짐승이 성자로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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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학자의 동물원
최지원 지음, 알렙
360쪽, 1만7000원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성호(星湖) 이익(1681~1763)은 우계(友鷄, 우애로운 닭)라 불리던 닭을 길렀다. 어미 닭이 들짐승에게 잡아먹힌 뒤 살아남은 암평아리가 성치 않은 몸으로 동생 병아리들을 지극정성 보살피자 사람들은 “닭을 보라” 하며 성자라 지칭했다. 재산 싸움하는 인간 형제들이 엄마 젖을 차지하려 다투는 짐승 형제와 다를 바 없다고 했던 이익은 이 일을 계기로 생각을 고쳐먹은 뒤 『성호전집』에 그 소회를 적었다. “이 놈은 사물 가운데 성자인가? 천성대로 행하는 분이 성인인데 짐승이면서 사람의 행실을 하니 이는 기질에 구애받지 않은 것인가?”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도 닭을 길렀는데 그 또한 병아리들의 우애에 감탄한 글을 『다산시문집』에 실었다. “어미를 떠나면 또 아우와 형이 서로 따르며 항상 같이 다니고 같이 자고, 개가 기웃거리면 서로 호위하고 새매가 지나가면 서로 소리친다.”

 닭뿐일까. 자식을 솔개에게 빼앗긴 뒤 꾀를 써 복수하고 자살한 어미 원숭이 얘기를 듣고 청장관(靑莊館) 이덕무(1741~93)는 “짐승이지만 사람이나 다름없고, 또 장사꾼은 사람이면서 오히려 짐승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으니, 어찌 사람이 귀하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조선 실학자들이 다량 남긴 동물 관찰기록은 사실적이며 꼼꼼한데다 인간의 본성과 연결 지어 당대 사회상을 비판했기에 읽는 맛이 각별하다. 본능에 지배당하는 기계처럼 살던 동물도 저러하거늘, “한탄하노니 차라리 잠들고 깸이 없이 저 벌레와 기와로 돌아가련다”고 읊었던 이덕무의 심정을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 인지과학을 전공하는 지은이의 변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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