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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된 택시 승차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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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안 다니는 엉뚱한 곳에 있으니 … ”

압구정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설치된 택시 승차대를 찾는 택시나 손님은 몇 시간째 찾아 보기 힘들었다. [김경록 기자]
반면 같은 시간 승차대에서 80여m 떨어진 백화점 앞 도로에는 택시가 줄지어 정차해 있었다. [김경록 기자]

길거리 어디서나 택시 쉽게 탈 수 있어
터미널·기차역 외엔 대부분 이용 뜸해
승객 찾아가는 ‘카카오택시’도 늘어

오전 10시쯤 압구정동의 한 도로. ‘택시 승차대’가 세워져 있었지만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정차해 있는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택시들이 서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승차대에서 80여m 떨어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이었다. ‘빈차’ 표시등에 불을 밝힌 차량 6대가 버스정류소를 가까스로 벗어난 도롯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이곳에 모여든 이유는 아파트 단지 출입구가 맞닿아 있고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백화점에서 나오는 승객을 태우기 좋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1시간여 동안 이곳에 모인 택시들이 승객을 태우고 속속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조금 떨어져 있는 승차대는 썰렁하기만 했다. 같은 날 오후에 다시 찾았지만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주민 이모씨(60·한양아파트 거주)는 “30년 이 아파트에 살았는데 저 승차대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며 “급할 때 타는 게 택시인데 굳이 (아파트 출입구에서 떨어진) 승차대까지 걸어가 탈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송모씨(60)도 “바로 코앞 도로에서도 택시를 쉽게 잡아탈 수 있으니 승차대까지는 잘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버스전용차선과 겹쳐 정차했다 벌금 내기도”

버스전용차선에 바로 붙어 설치된 택시 승차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택시 승차대도 기다리는 승객·택시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승차대 뒤편에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아파트 주민이 승차대로 와서 택시를 타려 해도 아파트 출입구에서 100여m는 걸어 나와야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인도에 가장 가까운 차로가 버스 전용이라 택시들이 정차하기도 어렵다.

 6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한 공모씨는 “이 승차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을 만난 적이 없다. 조금만 올라가면 아파트 정문과 횡단보도가 있는 곳이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탄다”며 “1년여 전에는 이 승차대에 잠시 정차했다가 버스전용차선 위반 벌금만 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택시 기사는 물론 이용 승객들까지 택시 승차대가 “무용지물”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택시 승차대는 75년 2월 처음 세워졌다. 2010년부터는 승차대 디자인을 지금 모습으로 바꿨다. 현 서울의 택시 승차대는 총 411곳(8월 17일 기준)이다. 이 중 강남구에 32곳, 서초구 20곳, 송파구 37곳이 있다.

 기자가 강남구 일대 승차대를 돌아봤다. 신사역 1번 출구 근처 같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택시가 서 있거나 승차대에서 택시를 타는 승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9호선 신논현역~7호선 논현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도 택시를 타는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이 도롯가 승차대를 이용하는 이는 없었다. 개포동 주공 7단지 아파트 근처 승차대도 마찬가지였다. 주민 김모씨(48·주공 7단지 거주)는 “이 승차대에서 택시를 타본 적도 택시가 정차해 있는 걸 본 적도 없다”며 “조금 떨어진 사거리가 아무래도 차량이 몰리기 때문에 택시 타기도 쉽다”고 말했다. 사거리와 승차대 거리는 30~40m였다.

승차대 잘 활용되는 곳은 극히 일부 지역

30년간 택시 운전을 했다는 임모씨는 “강남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일부 승차대는 엉뚱한 곳에 설치돼 있어 의아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도 그렇다고 택시가 주로 가지도 않는 곳에 승차대가 있다는 설명이다.

 택시 기사들이 승차대가 잘 활용되고 있다고 말하는 곳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서울역 앞” 같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이처럼 ‘승차대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는 길거리 어디서나 택시를 쉽게 잡아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대부분 지역은 ‘빈차’ 택시가 도로에 많은데 굳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승차대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거다. 승차대에 서 있는 사람부터 태워야 한다는 법이 있지도 않다. 여기에 일부 승차대는 택시기사와 이용 승객 편의를 고려치 않은 곳에 있다. 또 지붕과 벽으로 이뤄진 승차대 구조 때문에 승차대 뒤편 상인들에게 점포를 가린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카카오택시’ ‘티머니택시’ 같은 모바일 콜택시 서비스도 생겨났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승객이 있는 장소로 택시를 부를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택시는 기사 회원 수가 14만여 명이고 승객 누적 호출 수가 1200만 건을 넘어섰다(8월 둘째 주 기준).

서울시 “위치 개선, 콜택시 호출 기능 추가”

택시 승차대 위치는 해당 구청과 경찰청이 협의하고 시가 승인해 정한다. 시 택시관리팀 관계자는 “시민 편의를 우선하지만 교통 흐름, 인도 폭, 횡단보도에서 10m 이상 이격, 버스정류소와의 거리, 주변 상가 의견 등을 따져 선정하다 보니 일부 승차대 이용이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올해 이미 시내 택시 승·하차 지점을 빅데이터로 1차 분석했다”며 “내년 중순에 2차 빅데이터 분석한 후 새로 사업자가 정해지면 전체 승차대의 신·이설 및 철거를 검토할 예정이며, 구조물 디자인 변경과 콜택시 신청이나 긴급전화 같은 정보통신 기능 추가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이미 도로가 개발된 상태에서 교통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곳에 승차대를 짓다 보니 이용자 수요를 고려치 않은 구색 맞추기가 돼버렸다”며 “현재로서는 승차대 개수를 늘리기보다 수요(승객)·공급(택시)이 맞아 떨어지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게 승차대 이용을 높이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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