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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예견된 추행’ 적극 저항 안하면 강제추행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성추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제지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처제를 성추행한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로 기소된 A(49)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결혼한 A씨는 이듬해 여름 자신의 집에서 자고 있던 처제 B씨(당시 14세) 옆에 누워 몸을 만지고, 지난해 7월엔 자신의 집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자던 B씨를 만지다가 B씨가 이를 피해 다른 방의 2층 침대로 이동해 자려고 하자 따라가 이불을 덮어주는 척 하며 또 한 번 더듬은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A씨가 2004년에 저지른 범행에 대해서는 "항거 불능 상태를 이용해 친족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추행한 것"이라며 유죄로 봤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일부 혐의 무죄로 판단했다. 처제 B씨가 잠 들어있는 상태에서 몸을 만진 것은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지만, 이후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일어난 일은 강제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처제 B씨는 A씨가 강제추행을 해 다른 방으로 옮겼으므로 따라 들어온 A씨가 계속해서 추행행위를 할 수 있다고 충분히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폭행 또는 협박 등으로 추행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부주의 등을 틈타 기습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추행사실이 언니에게 알려져 큰 문제가 되는 일이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잠을 자는 시늉만 한 것”이라며 “어린 조카가 있어 집에서 나갈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B씨가 A씨에게 ‘신경쓰지 말고 나가’라는 취지로 말했던 점과 A씨의 주거지에서 나가지 않고 머무르며 조카를 돌보고, 이후 A씨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던 점 등을 보면 당혹감 등을 넘어 압박감이나 두려움까지 느끼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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