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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뉴스] 대리기사·취객 빼곡 … 배차 간격 길어 고단한 ‘올빼미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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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앙일보 지면·디지털 융합 콘텐트 ‘액션뉴스’의 두 번째 현장은 심야버스입니다.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액션캠’으로 촬영해 지면 기사와 함께 온라인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에 게재합니다. 액션캠은 몸에 부착해 촬영하는 카메라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합니다. 영상은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토요일인 지난 8일 새벽 3시20분, 서울 신촌의 왕복 8차로 대로변. 텅 빈 중앙차로를 시내버스 한 대가 시속 40㎞의 속도로 외롭게 달리고 있다.

 N26번 버스. 자정 무렵 서울 개화동 강서공영차고지를 출발해 홍대-광화문-종로-동대문을 거쳐 신내동 중랑공영차고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심야 ‘올빼미버스’다. 이 버스는 서울의 남서쪽 끝에서 북동쪽 끝을 가로지른다. 직선거리로만 56㎞. 실제 운행거리는 약 64㎞다. 제한속도 60㎞인 올빼미버스는 서울 시내를 3시간30분~4시간에 걸쳐 느릿느릿 달린다. 서울의 지친 하루를 가장 늦게 마무리하는 서민들이 이 버스에 몸을 싣는다.

 끼이익-.

 새벽 3시30분. 서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정류장에 올빼미버스가 멈춘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승객 10여 명이 한꺼번에 버스로 몰려든다. 다급한 마음에 뒷문으로 타려는 승객들도 있다. 넥타이를 풀어 헤친 회사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여대생, 새벽 장사를 마친 아주머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버스에 힘겹게 몸을 싣는다. 운전기사 김영찬(63)씨가 뒤를 돌아보며 목청을 높인다.

 “앞으로 타세요. 아, 글쎄 뒤로 타지 마시고요! 먼저 타신 분 은 뒤로 좀 들어가주세요.”

 가까스로 버스에 오른 김모(62)씨가 주변 승객들이 들으라는 듯 불만을 쏟아낸다.

 “새벽 3~4시엔 버스 타기가 쉽지 않은데 앞문만 열어놓고 들어가라고 소리만 지르면 되겠어요?”

 한바탕 소동을 겪은 뒤 버스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버스에 몸을 실은 승객은 50명 남짓. 좌석이라고 해봐야 30석이 전부인 버스에 절반가량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승객 대부분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일부 승객은 손잡이를 잡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서울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에도 서민들의 고단한 삶은 계속된다. 이들의 삶을 싣고 서울 시내를 달리는 올빼미버스는 2013년 4월 도입됐다. 당시 2개 노선을 시범 운행했는데, 이용객의 87%가 제도 도입에 찬성해 심야버스로 정착됐다. 그해 9월 6개 노선을 더 늘려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이 버스엔 새벽 시간 대리운전 일을 하는 기사들이 특히 많다. 요금이 2150원으로 5000원을 내고 이용하는 대리운전기사 전용 셔틀버스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올빼미버스의 8개 노선을 잘 활용하면 서울의 웬만한 곳까지 갈 수 있다.

 승객들의 가장 큰 불만은 배차 시간이다. 현재 올빼미버스의 배차 간격은 30분으로 일반 버스(평균 약 10분)에 비해 3배가량 더 길다. 버스에서 만난 대리운전기사 박영기(42)씨가 불만을 토로했다.

 “승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새벽 3~4시대에도 배차 간격을 30분대로 유지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새벽에는 신호를 안 지키는 차가 많아 급정거가 많거든요. 이렇게 승객들이 빼곡한데 급정거를 하면 각종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겠어요?”

 서울 아현동에 사는 송수연(52·여)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공무원들이 이 시간대에 버스를 한번 타봐야 해요. 새벽에 택시를 탈 수 없는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올빼미버스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거든요. 배차 간격을 좀 더 좁혀서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요.”

 승객들이 절반 이상 내린 새벽 3시45분. 서울 강서구 발산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한 50대 남성이 소주병을 든 채 버스에 올랐다. 만취 상태로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이 남성은 휘청거리면서 다른 승객들을 툭툭 건드렸다. 버스기사 김씨에게도 팔을 뻗어 운전을 방해하려 했다. 결국 한 승객이 그를 버스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버스기사는 “자주 있는 실랑이”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심야버스에 술 취한 승객이 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죠.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술 한잔 했겠거니, 넘길 때도 있는데…저렇게 다른 승객들에게 위협이 될 땐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올빼미버스 이용객은 본격 운행을 시작한 2013년 9월(9만2888명)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지난해 7월 처음으로 평균 이용객 25만 명을 넘긴 뒤로 비수기인 2월을 제외하면 25만 명 전후의 승객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올빼미버스의 배차 간격을 줄이거나 차량(현재 8개 노선, 47대)을 늘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빼미버스의 경우 종로·강남·홍대 등 특정 구간에서 특정 시간대에만 승객이 몰리고 있다”며 “일부 승객의 편의를 위해 심야버스를 주간버스처럼 운영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액션캠 촬영=한영익·박병현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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