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받아도 연금 깎이는데 … 성범죄 교사는 예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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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기도의 한 사립고 남자 교사인 B씨는 2009년 5월 학교법인으로부터 ‘파면’ 징계를 받고 교단을 떠났다. 학교에 현장 실습을 온 여자 교생을 성희롱한 혐의 때문이었다. 그는 “파면은 과하다”며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그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학교법인에 징계를 해임으로 낮출 것을 권고했다.

 교사에게 파면과 해임은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선 동일한 징계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교단을 떠난 뒤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파면 교사는 연금 50%를 삭감당하지만 해임 교사는 연금 100%를 받는다.

 공무원연금을 받는 교사 10만여 명 중 91%가 매달 연금을 200만원 넘게 받는다. 사학연금을 받는 사립 교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에선 지난해에 월 167만원씩 연간 2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전국에서 6명에 불과하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대표는 이에 대해 “파면·해임 모두 성범죄를 저지르고 교단을 떠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연금 삭감을 파면에만 국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성범죄로 해임당한 교사는 파면보다 낮은 비율로라도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내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선 교사의 연금을 삭감하는 등 좀 더 실질적인 징계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학생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최소 해임 이상의 징계를 받는다. 황교안 총리가 지난 7일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군인·공무원·교사에 대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가 적용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성범죄 교사에 대한 중징계 규정은 이미 갖춰져 있다.

2011년 개정된 ‘교육공무원의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선 성범죄에 대해 유형별로 ▶정도가 심한지 ▶고의성이 있는지 등을 판단해 파면·해임 등 징계 수위를 정해 놨다. 예를 들어 ▶폭력의 정도가 심하거나 혹은 ▶고의가 있으면 ‘파면’, 폭력의 정도가 약하고 실수가 작은 경우엔 해임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교사가 파면만 피하면 교직원 연금을 100%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가급적 해임 이하의 징계를 받기 위해 재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부가 학교 내 성범죄를 뿌리 뽑고자 한다면 교사 연금을 손대는 게 효과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 횡령·유용으로 인해 해임된 경우엔 연금이 25% 삭감된다.

 인사혁신처 이은영 복무과장은 “금품 수수는 공무원이 범죄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이라 연금 삭감 대상에 포함됐던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성범죄로 해임된 교사에게 연금 삭감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성범죄에 대한 징계 수위는 이미 충분히 높아 정부가 ‘중징계를 하겠다’는 경고만으론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개인적으로 연금 삭감 사유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교사들로선 행동을 극히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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