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촌 왜 문제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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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장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가 될 땅 깊숙이 들어서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중동평화협상의 주요 쟁점이 되어왔다.

이스라엘에 정착촌은 '생존권'을 보장하는 거주 및 안보 장치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획득한 점령지에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완충지대'를 형성할 계획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에 정착촌을 설립해 왔다.

정착촌의 구조도 이같은 안보 개념을 반영한다. 이들 마을은 주로 야산의 정상 부분에 건설된다. 방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착촌과 팔레스타인인 거주지 사이에는 전초기지(outpost) 역할을 하는 소규모의 정착촌이 동시에 건설된다.

주정착촌에 이르는 길목 등을 지키기 위해서다. 여기에 주요 정착촌은 바이패스(bypass)라는 준고속도로들로 연결돼 있다. 이 도로는 이스라엘인만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수백개에 달하는 정착촌 건설을 통해 '점령의 영구화'를 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전략적인 위치에 설립된 정착촌들과 바이패스에 의해 점령지는 분할돼 있다.

정착촌으로 나뉜 채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건설되면 한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이 자유로운 통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다. 경제.사회 개발을 위한 포괄적인 계획 수립과 행정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팔레스타인은 '생존을 위한'땅, 이스라엘은 '생존을 지키기 위한'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착촌 문제 해결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정착촌 철거는 분명히 긍정적인 조치지만 규모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실망시켰다.

철거 중이거나, 철거 예정인 정착촌은 위에 언급한 전초 기지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유명 일간지 예디오트 아호라노트도 지난 9일 "샤론 정부가 철거를 검토하고 있는 14~17개의 정착촌이 실제로는 이미 방치된 카라반(가건물)"이라고 지적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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