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승적 박탈 vs 복권…조계종 대중공사서 난상토론 벌어져

중앙일보

입력

멸빈(승적 박탈)인가, 복권인가.

29일 서울 잠실의 불광사에서 열린 ‘제5차 사부대중 대중공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에게 일종의 ‘갈림길’이었다. 1994년 독단적 종단 운영과 각종 해종 행위, 조계사 폭력사태 등에 대한 책임으로 멸빈당한 서의현 전 총무원장에 대한 사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종단의 재심호계원이 서 전 총무원장의 ‘멸빈’ 징계를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한 게 도화선이 됐다. 서 전 원장의 사면 복권에 대한 출구를 텄기 때문이다.

이에 94년 개혁세력과 재야불교단체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절집의 정서도 ‘서의현 사면’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날 대중공사에서는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조계종의 사부대중 147명이 참석한 대중공사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막을 내렸다. 토론은 치열했다. 백령도 몽운사의 부명 스님은 “94년 개혁 당시 실제 소신공양조(組)를 꾸릴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저도 당시에 멸빈을 각오하고 개혁에 동참했다”며 “100인 대중공사가 비법(非法)이 합법화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며 진정성 있는 논의를 먼저 주문했다.

현진 스님(여의도 포교원장)은 “서의현 전 원장은 94년 초법적 승려대회를 통해 멸빈됐다. 게다가 그 해 4월에 스스로 종단 탈종을 선언했다. 재심호계원의 행정적 절차보다 94년 승려대회의 결의사항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범계(犯戒·계를 위반함)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불광연구원 서재영 책임연구원은 “조계종은 대처승과 비구승의 구별, 그런 정화를 통해서 탄생한 종단이다. 서 전 원장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문에 처자식이 있다는 증언 내용이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이것은 음계를 범했기 때문에 내려진 멸빈이다”고 지적했다. 서 연구원은 또 “94년에 탈종을 선언한 것도 종단의 온갖 추궁을 피할 생각이었으리라 본다. 멸빈이 정당했는가, 아닌가 논의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20대 청년 불자도 목소리를 냈다. 94년 개혁 당시 두 살이었다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이채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잘 몰랐는데 이번 일로 알게 됐다. 중요한 건 대중의 공의라고 본다. 재심호계원의 판결이 대중의 공의 없이 이뤄진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번 판결이 불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94년 개혁정신은 계승하되 대승적 차원에서 서 전 원장에 대한 사면을 수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광전 스님은 “원로회의 스님들은 승려로서 여생을 마감하려는 서 전 총무원장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갖고 있다”며 “종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단이 절차에 대한 행정적 판단을 압도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혜총(전 총무원 포교원장) 스님은 “조계종이 그렇게 작은 단체가 아니다. 이제 21년간 멸빈을 당한 서의현 전 원장을 풀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중공사는 종합토론과 모둠토론을 거친 뒤 정리 모임으로 이어졌다.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이 논의를 이어가자는 주장과 재심호계원 판결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서의현 문제’를 놓고 조계종이 향후 어떤 파도를 타게 될 지 주목된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서의현=1936년생. 영천 은해사와 대구 동화사 주지 거쳐 1986~94년 두 차례 조계종 총무원장 역임. 연임 위해 3선 개헌 시도하다 개혁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94년 멸빈 징계를 받았다. ‘은처(隱妻)설’과 ‘문화재 은닉 의혹’ 등이 제기된 바 있다. 멸빈 이후에도 승복을 입고 승려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