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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깥에서 보는 한국

마냥 기쁘지는 않은 광복 7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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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 8월 15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두 나라에서는 격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남한과 북한이냐고? 아니다. 남한·북한은 두 개의 국가(state)다. 한국은 한 나라(country)다. 한국과 인도다. 8월 15일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이다. 1947년 영국의 인도 통치가 끝났다. 8월 15일에는 7500만 명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12억7500만 명의 인도인들이 자유의 회복을 기념한다.

 자유를 얻은 한국과 인도는 나라가 분단됐다. 힌두교인들의 지배를 두려워한 인도의 무슬림들은 자신들만의 국가 수립을 요구했다. 주로 무슬림들이 사는 아대륙(亞大陸)의 동쪽과 서쪽을 다급하게 떼어내 국경선을 만들었다. ‘상대편’ 지역에 살던 1200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 생긴 선을 넘어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끔찍한 살육이 벌어져 100만 명이 사망했다. 신생국가 파키스탄마저 1971년에 분할됐다. 파키스탄의 동쪽은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역시 유혈 참극을 피할 수 없었다.

 1947년 이래 인도와 파키스탄은 네 번의 전쟁을 치렀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양국 관계는 흉조를 띠고 있다. 아대륙의 태생적 분열을 헤집고 세상으로 나온 아귀들이 아직도 배부른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한 일시적인 분할이 영속화됐고 참혹한 내전이 발발했다. 한국인들이 갈망했던 자유에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인 나도 8월 15일을 마냥 기쁘게 맞이하는 게 힘들다. 한국인들은 자유를 위해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이북에서 태어난 이들에겐 ‘자유’라는 말 자체가 삶에 적용되지 않는다. 35년간의 일제 억압으로도 모자라 북한 사람들은 그 두 배에 달하는 세월 동안 자생적으로 생긴 폭군들의 지배를 받았다.

 70년이다! 일시적인 분할이 그토록 오래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분단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대부분의 세계인에게 코리아는 없다. 그저 사우스코리아(South Korea)와 노스코리아(North Korea)가 있을 뿐이다. 전후(戰後) 세계는 ‘두 개의 한국’밖에 모른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까. 그 출발점은 말하기는 쉽고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났다. 누구도 역사를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한국은 남북한 관계와 한·일 관계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두 관계 모두 1945년이 뿌리다. 사실 북한·일본 모두 못되게 굴었다. 아마도 한국인들은 용서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다. 또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단호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놓아버려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

 ‘절대 안 된다!’고 많은 분노한 한국인들이 반응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번만은 일본이 진심으로 ‘위안부’와 다른 악행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요구한다. 북한의 경우도 적어도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자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두 가지 모두 정당한 요구다. 하지만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 있다. 만약 그들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은 변함없이 사과를 요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플랜B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가.

 우선 일본 문제를 따져보자.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번 8월 15일에 뭐라고 발언할 것인가. 그의 입에서 제대로 된 사과의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게 과연 현실적일까. 만약 그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안함의 경우 평양은 아직도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서울에는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북한은 결코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큰 그림(big picture)’을 감안해 현재의 남북한 사이의 교착상태를 깨트리는 게 시급하지 않을까.

 나는 한국의 북쪽 전선이건 동쪽 전선이건 ‘항복’을 권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 외교는 뒤가 아니라 앞을 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과 더 나은 유대 관계를 맺는 게 한국의 국익과 부합된다. 또 그것이 가능하다. 한·일 양국의 엘리트가 좀 더 열심히 노력했다면 수십 년 전부터 진정한 우호 관계가 가능했다. 1945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이 그래 온 것처럼 말이다.

 북한은 더욱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현상유지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긴장은 위험하다. 임기가 거의 반이 지났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외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선하고 활기차며 창의적인 사고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이번 8월 15일에 나는 사랑하는 한국을 위해 이곳 영국에서 잔을 들 것이다. 내 건배사는 한국과 일본·북한 사이의 화해를 기원할 것이다. 북한과도 일본과도 화해는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 또 이미 많이 늦었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